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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0415 용모가 변화되신 예수님 (누가복음 9장 28절 - 36절 ) 조회수 : 675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04-13

변화산 사건은 공관복음에 모두 등장한다. 우리는 부활을 믿고 고대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부활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부활 후의 일상적인 삶은 어떠한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이러한 의문에 관한 대답의 일부를 주셨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모되는 모습은 영적 세계 예고편이다.

Ⅰ.  고난은 영광의 전주곡이다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지 팔일 후에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날짜를 명기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의 예고와 변모의 사건은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상호 상관이 있는 관련된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예수님의 고난은 장차 있을 영광의 전주곡이었다. 고난은 영광을 가져왔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 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고난 후에는 반드시 축복이 따른다.

욥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Ⅱ.우리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한다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계1:14-16.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께서는 찬란한 모습으로 변모하셨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활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결하고 찬란한지를 보여주셨다.

고전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Ⅲ. 세상 떠난 분들은 살아있다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예수님의 변모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다가 죽은 사람들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더불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보아서 알 수가 있다. 모세와 엘리야가 환상이었다면 이 사건은 의미가 없다. 진짜 모세와 진짜 엘리야가 나타났기 때문에 이 사건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 믿고 돌아가신 신앙의 선진들은 천국에서 살아 계신다.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면 그분들을 만나서 영원토록 헤어짐 없이 즐길 것이다. 만났을 때에 돌아가신 분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삶을 결심하시고 사시기를 바란다.

IV. 예수님은 예언과 율법의 완성이다

히8:10-13.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을까?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예언을 상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구약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구약이 신약을 예비한 것같이 구약을 대표하는 그 두 사람이 예수님의 시대를 준비했던 것이다. 구약이 신약에게 바톤을 넘겨준 것이다. 이제 구약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고로 이제는 더 이상 구약에 연연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 두 분이 나타났다는 것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율법과 예언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V. 하나님은 죽는 것을 기뻐하신다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을까? 예수님의 예루살렘행과 수난에 대한 대화를 나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좋아한다고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죽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면 죽어야한다. 죽음에는 세 가지가 있겠다. 첫째는 순교다.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셋째는 자기 목숨보다도 더 귀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죽을 때에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죽고자 하면 산다. 포기하면 얻는다. 죽을 때에 영적인 권위가 생긴다.

창22:16-17.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VI. 세상에서 천국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려가자고 하셨다.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죽어야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용모와 빛이 나던 옷은 원상으로 돌아갔다. 광채가 예수님을 떠났다. 예수님께서는 보통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예수님은 모든 영광을 포기하셨다. 다시 종의 형상을 입고 찬란한 변화산에서 어두운 인생의 광장으로 내려오셨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갖은 모욕을 가하고 주먹질을 할 것이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멸시의 계단을 내려가시게 된다. 뭇 사람의 희롱거리가 되고 마귀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파도 소리와 같이 들끓는 백성들의 욕설이 그의 귀를 따갑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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