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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0429 제자도의 대가 (누가복음 9장 51절 - 62절) 조회수 : 58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04-27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나, 사마리아인들의 거부를 경험하신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걸어가시며 자신을 따르는 제자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치신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고 생각했던 일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 문화에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Ⅰ.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는 예수님의 굳은 결심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이미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이르면 백성들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예고하셨다(눅9:21-50). 예수께서는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칠 때가 된 줄 아시고 스스로 그 곳을 향해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을 하셨던 것이다.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거부 앞에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부에 대해서 격하게 반응한 제자들을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셨다. 어떤 사람을 벌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제자의 역할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자기의 분수를 넘어서 하나님의 역할인 벌하는 것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꾸짖으시는 것이다.

막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55.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행8:5-8.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Ⅱ.제자도 1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이 사람은 예수께 어디로 가시든지 자신이 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응답은 자신을 따른다는 것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선택한 삶은 세상에서 어떠한 보장도 없는 자의 삶이고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러한 삶의 방식을 기꺼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제자도 2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예수님의 초청에 이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만일 그의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면 그의 요청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심지어 필연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러한 이성적인 요구를 단호한 어조로 거부하셨다.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심지어 가족의 의무와 책임보다도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이다.

Ⅳ. 제자도 3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기에 앞서 가족들과 작별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암묵적으로 허락하지 않으신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이래저래 급진적이다. 아무리 중요한 가치라 하더라도 제일 중요한 새로운 가치 앞에서는 부차적인 가치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믿기 전과 똑같이 살면서도 신앙생활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믿기만 하면 인격이나 생활 같은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을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도 않을 바에야 무엇 때문에 중생이니 새로운 피조물이니 하며 거창한 말만 늘어놓겠는가?

우리 주변에도 구원받는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우리를 제자 삼기 위해서 구원해주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우리를 제자로 삼기위해서 불러주신 것이다. 제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자들에게 주님을 따르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앞서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가장 소중한 것보다 주님을, 가장 급한 것보다 주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주님의 제자다.

우리는 왜 주님의 제자로서 잘 살아가지 못하는가? 첫째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금만 어려워도 뒤로 물러서고 포기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이것이 도리어 기쁨임을 안다면 감당할 수 있다. 둘째 종종 일상이 우리의 사명과 목적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정신 차리고 근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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