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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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0520 참 믿음 (누가복음 10장 25절 - 42절) 조회수 : 29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05-18

본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율법 교사와 마르다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Ⅰ.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25-37절)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악한 동기를 가진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한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물으셨다. 율법에 정통한 그는 주저함 없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라도 답하였다. 그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29) 누가 자신이 사랑해야 하는 이웃인지 다시 한 번 질문하였다. 예수님은 대답 대신 한 비유를 말씀하신 후,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고 물으셨다(36).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웃이 누구인지를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행동이었다. 예수님은 “가서 아는대로 행하라”는 말씀으로 핵심을 찌르셨다.

1>말씀을 알기만 하는 사람 - 율법 교사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말씀을 아는데, 그저 알기만 하는 사람이다. 말씀에 대해서라면 아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그런데 주님이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행함이다. 네가 잘 알고 있구나. 이제는 가서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2>말씀을 알지만 행하지 않는 사람 - 이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 말씀을 알지만 아예 대놓고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주의 말씀이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친다. 사람을 지나침과 더불어 말씀을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3>말씀을 알고 행하는 사람 - 주님이 기대하시는 사람은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주께서 하나님 나라의 벽돌로 사용하실 사람은 아는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다. 교회당에서 배운 말씀을 거리에서 행하는 사람이다. 의로움은 지식이 아니라 행함이다. 아는 만큼 의로운 것이 아니라, 행하는 만큼 의롭다. 이웃이 누구냐? 이런 문제로 논쟁만 벌이지 말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율법교사에게 주신 말씀이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말씀은 배움의 대상이고 묵상의 대상이지만, 그 무엇보다 행함의 대상이다. 행한 만큼 말씀이고 행한 만큼 의로움이다. 한 두 걸음이라도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주님 나라의 벽돌이 된다.

Ⅱ. 마르다와 마리아(38-42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도착하셨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모두 예수님과의 만남을 기뻐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섬기는 방식은 달랐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에 앉아 말씀을 들었고,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식사를 준비하였다.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말씀을 듣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일이지만, 피곤하고 시장하신 예수님을 위해 누군가는 식사 준비를 하여야 했다.

1>많은 일로 분주한 고마운 사람 - 마르다는 많은 일로 분주하다. 고마운 사람이다. 구석구석 분주하게 챙기고 또 챙긴다. 몸은 고되고 마음도 고될 것이다. 급기야 주님께 와서 도와주지 않는 동생을 타박하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2>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지혜로운 사람 - 주님이 더 지혜로운 길을 소개하신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사람은 애초에 한계가 있는 존재다. 마르다의 근심과 염려는 어쩌면 자기 한계를 넘어서 일한 데서 온 부작용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두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다.

3>존귀한 일에 집중하는 존귀한 사람 - 마리아는 얼핏 얌체같이 보일지 몰라도 인생의 에너지를 정말로 존귀한 곳에 투자한 지혜로운 인생이었다. 음식 장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늘만은 주의 말씀을 듣는 게 우선이다. 얌체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생명의 말씀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우선순위의 문제다.

마르다의 문제는 무엇인가? 많은 일로 분주하였다. 마르다는 하는 일이 많아서 마음이 분주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섬김의 사역을 비하하신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마르다를 비난하는 하지도 않으셨다. 많은 일로 분주해서 탈진하면 남에게 불평하게 되는 일이 있다고 교훈하신 것이다.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42). 우리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역, 내 은사가 발휘할 수 있는 사역 한, 두 가지를 정해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 이때 자기 사역이 귀한 줄 알면 다른 사람의 사역도 귀한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사역에 지나친 자부심이 있어서 모두가 같은 사역에 헌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함께 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판단하게 된다. 이것이 마르다의 잘못된 태도다. 우리는 한계가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능력 면에서도 또 주어진 시간 면에서 우리는 유한한 인생이다. 우리는 섬기는 자 이전에 먹어야 하는 존재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종종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기 원하실지 모른다. 예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열정으로 감당하다가 후에 원망하게 되거나 염려와 근심의 마음을 갖게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주님의 교제를 우선시하자.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을 때에는 마음을 기울여 할 수 있는 존귀한 일에 헌신하라. 주님의 일은 한 두 가지 은사를 따라 섬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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