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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41020 살리는가 죽이는가? (누가복음 22:1-7) 조회수 : 136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4-10-22

20241020 살리는가 죽이는가? (누가복음 22:1-7)

1. 죽음과 생명을 상징하는 피
"피"는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상징이다. 피는 죽음의 흔적이기도 하며,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기도 하다. 본문의 배경은 유월절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해방과 구원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이집트에 임한 장자의 죽음이라는 마지막 재앙은 양이 피 흘리며 희생하는 죽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죽음과 생명을 생각하는 절기였다. 본문은 유월절이라는 시간적 배경 속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조상들이 생명과 해방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에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어야 할 의무를 지닌 지도자들이, 도리어 생명이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악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깊은 어둠과 죄악 속에 빠져있었는지를 보여준다.

2. 죽음의 음모를 꾸민 종교 지도자들
예수님은 백성들의 인기를 얻고 계셨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백성들의 눈을 피해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전 권력을 비판하셨고, 그들의 율법주의를 비판하셨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위태로워진 그들의 지위와 재물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잘 이해하고 깨달았다면, 참 메시아가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핍박했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사탄에게 속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유월절의 은혜를 역행하였다. 생명 주심을 기념하는 절기에 생명을 빼앗을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지도자로서의 책임은 오간 데 없고, 특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떤 잔인한 짓도 행할 수 있는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3. 죽음의 음모를 도운 가룟 유다
사탄의 하수인이었던 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조력자가 나타난다. 백성들의 눈에 띄지 않게 예수님을 체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겠다는 가룟 유다가 나타났다.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지속적으로 탐색했다. 유다는 어쩔 수 없이 배반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배반했다.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간 것은 유다가 동의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다는 “돈을” 사랑한 자였다. 성경은 돈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그것이 우리의 신이 된다고 말씀한다. 가룟 유다는 3년을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다니면서, 복음을 배우고 복음을 전한 열 두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유다는 예수님을 따른 수많은 “무리들 중에 한 명”도 아니었고, 핵심 제자 그룹인 열두 명에 속한 자였는데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다. 우리들 역시도 사탄과 치열하게 영적 전쟁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사탄의 유혹에 마음문을 여는 일이 없길 바란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고, 하나님나라를 바로 알아 기쁨으로 그 나라에 동참하시기를 바란다!

4. 생명을 주시려고 희생하신 예수님
본문을 잘 관찰해보면, 1절과 7절에 유월절에 대한 내용이 책 앞표지와 뒷표지처럼 중간 2절에서 6절의 내용을 감싸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유월절 양이심이 암시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 양의 피가 문에 칠해질 때 이스라엘 백성이 살게 된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죄인을 위해 하늘 성소에 뿌려질 때, 믿는 자는 살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 주심을 기념하는 유월절에, 종교 지도자들과 가룟 유다는 생명을 빼앗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주는 유월절의 목적대로, 스스로 유월절 희생양이 되셔서, 죽임을 당하시고, 그 피로 백성들을 구원하려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죽은 것을 살리시는 분이시다. 자기의 피를 흘려 다른 이를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신 것이다.

5. 살리는 자입니까? 죽이는 자입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살리는 자인가? 죽이는 자인가? 우리의 삶은 절망과 슬픔 속에 있는 사람을 살리는 삶인가? 아니면 멀쩡한 사람을 낙담시키고 좌절시키는 삶인가? 종교 지도자들과 유다가 걸어간 길은 자기 욕망을 위해 타인의 죽음을 도모하는 길이었다. 사탄과 세상은 남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만 추구하라고 꼬드긴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야 하는 목소리는, 생명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고, 희생하고, 섬기는 길로 가라는 목소리다. 좁은 길이라도 살려내는 길, 복돋우는 길로 가라는 목소리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다. 우리가 받은 복과 은혜를 나누고,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세상에 생명의 나무를 심는 자로 살아야 한다. 

6. 결론: 생명을 주는 길, 예수님의 길을 따릅시다!
종교 지도자들과 가룟 유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길을 갔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길을 가셨다. 우리 교회 목장들이 11월달에 행나모를 실시하려고 준비중이다. 이 행나모는, 곧 생명을 나누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 뭔가 부담스럽고, 뭔가 걱정될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을 나눠주고 생명을 구하는 일은 본래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생명을 주는 자로 살기로 결단하시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받은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나누지 않으면 그분들은 구원의 은혜를 영영 들을 기회가 없다. 우리가 사랑과 희생으로 그분들을 섬기지 않으면 그분들은 조건 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할 기회가 영영 없다. 먼저 들은 자들이 가서 그들을 예수님께 초대해야 한다. 순종하며 이 길을 선택할 때,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실 것이다. 방관하고, 이용하고, 심지어 해치는 길을 가는 자들로 가득한 이 세상이지만,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의 제자가 된 우리가 살리고 섬기고 나누는 자로 살아갈 때 부족한 우리를 통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줄로 믿는다. VIP들의 마음문이 열리고, 그들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삶이 변화되고 생명과 구원 얻는 놀라운 간증들이 이어지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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