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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오현준 심현주 목자 목녀님을 소개합니다 조회수 : 640
  작성자 : 이종관목사 작성일 : 2018-01-11

오현준 심현주 목자 목녀 간증

 

안녕하십니까 개척 목장을 하게된 오현준입니다.


부족하고 못난 사람을 이 자리에서 간증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가정예배 교회 출석 성경 암송등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 율법, 규율등 형식에 치우친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초 중 고 생활을 부산에서 했습니다.
유 초등 시절에는 아버지의 억압에 출석하고 중 고등시절에는  친구 관계로 출석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아버지의 교육방침에 따라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믿음은 멀어지고 경제적 가치를 따라 세상적으로 살며 아버지에 대한 불평과 불만만 커져 갔습니다.
아버지는 건축업을 하시면서 교회 건축이 최우선이셨고 자녀 교육비 생활비는 안주시면서 미자립교회 환경이 어려운 신학생을 도우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신앙과도 멀어져 갔습니다. 대학 생활 도중 아버지는 건축업을 그만두시고 청도로 귀향 하시어 사과 과수원을 하시면서 방학이면 불러서 일을 시키시고 학비며 생활비는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 이런 생활이 싫어서 췽업하여 6년간 해외 생활을 하고 귀국하여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껴 퇴사하고 전기공사업체를 하면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세상적으로 살면서 주위 사람들의 권유와 늦은 혼기로 신앙과 무관한 사람과 만나 결혼 하였으나 방탕한 나의 생활로 아내가 공사 대금을 들고 가출하여 이혼하고 사업도 정리하고 세상과 벗하며 방탕한 생활의 연속 타락의 끝으로 갈 때 어머니의 기도하시는 모습과 아버지의 애창곡 338장 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찬송 부르시는 모습이 떠올라 결혼할 때 선물 받은 성경 찬송을 찾아 성경을 읽으며 이제는 돌아서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생각하며 다닐만한 교회를 찾았으나 명분이 없어서 가지 못하고 약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제단을 쌓은것 본받아서 찬송귀절이 생각나 혼자 집에서 성경읽고 묵상하던중 무직이던 나에게 야곱의 직업이 생각나 축산업에 관한 책과 여러목장을 견학하고 아버지르 찾아가 과수원의 일부의 축사를 짓고 축산업을 하자고 설득하여 허락을 받아 축사를 짓고 송아지를 들이고 키우면서 규모도 확장하여 축사 2동에 소를 채우고 이제 수입을 볼쯤 이제 가정을 이루라는 아버님의 말씀에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교재중 신실한 믿음과 착한심성에 거의 매일 찾아가 만나면서 청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시골교회에 출석하며 축산일과 과수원일을 열심히하며 아버지와의 소득문제로 분가하여 울산으로 나와 분식점이며 채소 과일 장사를 햇으나 잘되지 않고 아버지의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에 술로 풀려고 했고 이로 인하여 아내와 다툼이 잦아지고 싸우면 술마시고 싸우는 일이 계속되던중 취업하기로 하고 중공업 하청에 들어가 생활을 하던중 계속되는 아버지호출 목장일 일은 내가 하고 돈은 다른사람이 챙긴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는 커지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 아니다 싶어 회사를 관두고 멀리 거제도 가서 몇 달 일하고 울산으로 다시오고 몇 달 쉬고 이런 생활의 반복으로 아내도 지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몇 달간의 수입으로 업체를 내려고 집에는 생활비도 못갖다주고 아내는 빛으로 생활하고 이런상황에서 이혼도 생각하고 하다 자녀의 학교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로 동구에서 울주군으로 이사하였습니다. 
교회문제로 의논중 아이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시민교회를 알게되고 주일예배만 출석하면서 알게된 담임목사님의 삶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목회자의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무너지고 이런 목사님도 계시구나 생각하니 주일 예배의 설교가 나를 찍어서 하시는것 같아 회개가 되고 말씀을 읽게 되니 기도가 되고 새벽기도에 나가게 되고 순종할 마음이 생겨 세겹줄 기도회 참석하고 기도의 응답도 받고 신앙 생활의 즐거움이 생겻습니다.  새로운 삶을 공부하면서 나의 잘못된 삶을 느끼고 회개하며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되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어져 가지만 여전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풀리지 않고 스트레스만 쌓여가고 호출은 여전히 늘어가고 힘들게 생활하던중 아버지의 뇌줄중으로 입원과 퇴원이 반복 되던중 오춘도 목자의 간증을 들을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되어 간증을 듣는 중 개척목장을 생각하게 되고 아내와 같이 생각하고 의논하여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섬기는 생활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아내를 힘들게 했구나 느끼며 더욱더 아내를 섬기게 되고 회개가 되고 사과하므로 우리 가정의 평화가 오고 즐거운 삶이 되었으나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여전했으나 아버지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계속 기도하며 생활중 내가 아버지에게 잘못했던것 생각나게 하시고 아버지가 나의 힘이 되었던 때가 생각나게 하시니 아버지께 죄송합니다 못난 자식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동안 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니 아버님도 너가 있어서 그동안 일도 할수 있었다 고생했다고 말씀하시니 모든 담이 무너지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내곁에 계시는데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고 구하지 않아서 기도하지 않아서 내가 누리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삶이 이해가 되고 섭섭했던 부분들도 풀리니 이제껏 믿음을 삶으로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불평 불만만 했던것을 회개하고 아버님의 신앙과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나라일에 열심을 다하렵니다. 개척목자로써 세상속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목장을 이루어 가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심현주입니다.


이 영광된 자리에 간증까지 하게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저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저의 간증이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원하며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도 함평에서 8남매중 7째로 태어났고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으로 별명이 꿔다놓은 보릿자리라고 할만큼 말수도 없고 구석에 조용히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모님 두분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살아생전 두분의 잦은 싸움으로 저희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계모임에서 돈을 갖고 도망한 사람 때문에 계주로서 모든 분들의 돈을 책임져야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결국 저희가족은 살던 곳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아빠는 서울에서 길거리 장사를 하였고 엄마는 남의 집에 식모살이생활을 하며 형제들은 이산가족처럼 흩어졌고 저는 작은집에 눈치를 보며 지내다가 언니들과 자취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시절 큰오빠께서 목회의 길을 걷게 되어 오빠가 있는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냥 교회에 참석만 했을 뿐, 하나님이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알지도 못하는 그런저런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며 성장하여, 전 서울에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첫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지만 아이가 7개월 때 남편이 그만 교통사고로 죽었고 아이를 안고, 친정언니가 있는 울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사람들의 권유와 언니 소개로 믿는 집안 장로님, 권사님 가정의 자녀분이라는 두 번째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만남 당시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그 사람을 두고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그 사람의 외모 등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리하게 하여 주셨고, 장로님 권사님 밑에 자란 자녀들은 다를 거라는 기대감과 화목하고 즐거운 가정일거라는 생각. 나도 그렇게 화목한 가정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에 하나님의 뜻 인가하고 결혼을 하고, 시부모님께서 계신 시골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결혼생활과는 멀게 아버님은 아들을 믿지 못하고 항상 불만이셨고 화를 잘 내셨으며 지적만 하시는 등 가정에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툼이 있는 날마다 남편은 조용히 사라져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분가하게 되었을때, 시부모님은 기름값인 30만원만 손에 쥐어 주셨고 시골에서 쓰던 낡은 트럭에 옷가지만 챙겨 울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죽은 전남편 보상금으로 작은 아파트를 구해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경제적인 힘듬으로  첫 결혼 패물을 팔아 트럭에 야채장사, 분식집 등을 했지만 실패하였고 사업 실패 후 남편은 직장을 구했지만, 일년에도 몇 번이나 직장을 옮기는 등 정착하지 못해 고전적인 수입이 전혀 없엇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들이 반복되며 쌓인 스트레스를 저에게 폭행과 폭언 등으로 풀어 밤에 잠을 못자게 괴롭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사는 게 지옥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큰아이만 데리고 한달동안 가출을 하기도 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책을 보게 하셔서 가정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 후 많은 자녀들을 선물로 주셔서 슬하에 1남 4녀를 두게 하셨지만, 남편은 여전히 술을 마시며 망가져 갔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기도하는데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차라리 믿지 말까. 했다가도 그래도 하나님밖에 안계신데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는데 하는 마음으로 교회교사, 구역장, 성가대등 봉사를 했지만, 기쁨이 있었다가도 오래가지 못하였고 가정의 본이 되지 못함이 남에게 부끄러워 떳떳하게 내 가정을 보이지 못하여 밖에서는 웃었지만 집안에선 늘 우울한 저였고. 그 영향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아이들은 자라며 웃음이 사라져 갔고 저희의 안좋은 모습을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 모습들이 제일 저의 맘을 힘들게 하여 이혼을 생각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저는 그렇게 지쳐가며 영은 죽어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힘든 생활은 힘든 중에 하나님은 그때 그때 은혜를 주시고 의지하게 하시고 경제적으로 채워주셨지만 그 당시엔 매 상황을 극복하는데 급급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생활 중에 저의 인생의 큰 변환점이 된 일이 생겨났습니다. 경제적인 이유와 고등학생인 자녀의 학교 선생님과 관계의 어려움의 이유로 인하여 2015년 1월에 이사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셋째 아들이 다니는 학교 미술선생님을 통해 이곳. 시민교회로 신앙의 둥지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20여년의 신앙 생활 중 목장예배는 처음이었고 주일 예배 중에 간증을 하시는 분들을 보고 새로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주 듣는 간증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의 남편이 목자가 되고 변화되어서 간증하는 저 자리에 세워졌으면 하고 꿈꾸게 되었습니다. 
새로움과 꿈꾸는 마음으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교회에서 3월에 세겹줄 기도회를 시작하였는데 제목이 영적침체를 극복하자였습니다. 저를 위한 기도회 같았습니다. 3명이 짝을 이루어 서로 기도하며 교제할 때 한분이 저에게 남편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영이 있다며 회개하라고 말씀을 하셨고 처음에는 화가 났습니다. 이때 까지 내가 당해온 일을. 남편을 몰라서 그렇다고. 난 착하고 이때까지 희생하면서 살아왔는데 나보고 회개하라니 하는 생각에 마음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남편과 꾸준히 참석을 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졌던 성찬식에서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피인 포도주를 마셨을 때, 저의 마음에서부터 따뜻하게 밀려들어오는 주님의 임재함을 느끼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이 저에게 심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심을 체험케 하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믿어지게 하시는 일들이 일어나자 제 안에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셔 눈물콧물 주체 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추한 모든 생각, 죄들이 죄인인 저에게 찾아오신 예수님께 부끄러운 알몸을 보이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하고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저를 변화 시키시고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하나님께서 섬세하게 저를 터치하셨습니다. 
말씀공부로 이때까지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기초가 없었던 저에게 말씀을 보게 하셔서 마냥 성경책이 동화처럼 여겨졌었던 나에게 능력이 되지 못했던 말씀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들로 능력으로 믿어지게 되었고 말씀과 기도와 회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셨으며 그냥 착하게 믿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봉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저에게 매순간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회개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위가 있는 믿는 자가 되라는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전 진심으로 감사할 것 밖에 없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 교회 다녀서가 아닌 기쁨으로 섬기고 싶은 마음으로 수요 실버 식당봉사를 섬기고 그 당시 화요전도도 나가서 전도하게 하였고 목소리로 섬기는 일도 하게 하셨으며 파워가 넘치는 중등부에 교육목자로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탄식으로 저의 문제가 아닌 더 넓은 지경을 하락하시어, 남편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제까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만 여겨졌던 남편이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저라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지 못한 것. 사랑에 갈급함을 느끼는 영혼을 보게 하셨습니다. 남편을 위해 가도하며 남편을 세워주고 칭찬해 주며 저를 변화하게 하신 하나님은 결국 남편도 변하게 하셨습니다. 어쩌다 설거지 하나 해주던지 청소를 한번 하고는 나같은 신랑없지 하며 온갖 생색을 내던 사람이, 이제 내가 당신을 섬길께요 하며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말을 하였고 또 남편과 교회의 생명의 삶이라는 말씀공부를 통해 담임목사님께서 가르쳐주셨는데 남편을 변화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목사님의 진실함이 베어 나오는 말씀과 겸손과 검소함에 이런 분도 계시구나 하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로님 아들로 목사님들의 이중성을 보아왔다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생각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말씀공부로 이때까지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기초가 없었던 저에게 말씀을 보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와 회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들에게 남편과 함께 부모로써 이때까지 보였던 안좋은 모습, 생각들을 진심으로 사과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습니다.
아직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환경이 크게 바뀐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뇌경색으로 거동을 못하시게 되어 저희 집에 시아버지를 모시고 섬기게 하시다 이번 1월2일에 소천하시기 전 저에게 고맙다 하시며 저희 집에서 마지막 임종을 보게 하시며, 저희 가족 내 뿐만 아니라, 이때까지 저를 힘들게 했던 관계까지 회복되는 기회를 주시는 등 저의 어려움을 아시고 하나하나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또 개척목장을 꿈꾸고 이렇게 분가를 하게 하신 하나님 목녀로 부족하지만 섬기게 하신 하나님께 제 뜻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하나님 하실 일을 잠잠히 기다리며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남편을 가르치지 않고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돕는 배필로 서게 하셔서 저의 가정이 하나님께 온전히 세워지고 다른 가정들도 세워지는 일들이 있기를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저의 간증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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