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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0519 작은 행복을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조회수 : 727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9-05-17

저는 어린 시절이 썩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무서웠던 아버지, 그리고 늘 스트레스를 저에게 풀었던 형의 구타로 인해서 집은 언제나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고, 해가 져서 갈 때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언제나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서초동에 있는 집에서 강북에 있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버스가 한강 다리밑으로 떨어져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자주 뉴스에 나곤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 한적한 버스에 자리가 나서 앉으면 잠을 청하면서 늘 내가 탄 버스가 한강으로 떨어져 내가 잠에서 깰 때는 죽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매사에 비관적이고 불만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성품은 대학 진학 후 정치 외교학과의 특성과 함께 80년대 초반의 대학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제 성품대로 마음껏 비관하고 불만하며 그렇게 청년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관적이고 불만이 많은 성품은 인생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끊임없이 본인을 괴롭히면서 고통당하는 것이지요.

그러던 저를 건져주신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너무나 행복하고 만사에 긍정적인 아내를 만나게 하셔서 반대편 쪽의 삶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어느날 서른살 초반에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크다고 했지요. 그래서 그랬는지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저를 엄청 행복하게 했는데, 길을 걷다가도 밤에 자려고 누었을 때에도 울컥 울컥 감격의 눈물이 솟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갑자기 행복한 사람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작은 일에 화가 나고, 급해지고, 염려하고, 비관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오랜 습관같은 것이어서 많은 시간이 걸려서 내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십대 후반으로 접어든 요즈음에야 뒤돌아 보니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나아져왔고 이제는 많이 행복한 사람으로 변해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행복을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작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누릴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대부분 새벽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기 때문에 햇빛을 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덜 바쁜 어느날은 성경이나 책을 한권 들고 맥도날드에 가서 점심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서 성경을 읽으며 먹는 점심은 너무나 좋습니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아름답고, 나무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날리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도 너무나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 그런 평화스러운 순간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그럴때면 하늘을 올려다 보며 “하나님,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신것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거리는데 때로는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큰 행복이나 큰 불행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부분 우리의 인생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작은 행복과 작은 불행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는 그런 작은 것들로 결정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흩어져 있는 그런 시간을 즐기며 행복해 하기 보다는 불만족스러운 것을 불평하느라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내 삶에 있는 작은 것을 불평하기 시작하면, 푸른 하늘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은혜는 기억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작은 행복들을 낭비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도 모르게 긴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금방 부정적이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그것으로 염려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서 제가 염려하고 있다면 그건 제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나의 의지와 욕심과 야망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는 활짝 미소를 지어 웃습니다. 그럴 때 행복함을 되찾는 것 같습니다.  

가정교회는 교회에 행복과 웃음이 많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럴려면 담임목사가 먼저 행복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담임 목사가 행복해 하면 그 행복은 전염이 되고 성도들도 행복해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이 웃으시기 바랍니다. 늘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목회로 인해서 성도로 인해서 행복해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수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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