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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50622 (열왕기상 17:8-24)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을 때 조회수 : 145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5-06-23

20250622 (열왕기상 17:8-24)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을 때

눈앞이 캄캄하고 너무나 절망스러운 인생의 위기를 경험하신 적이 있는가? “하나님! 정말 나를 보고 계신가요? 왜 지금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내가 무언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내게 이런 벌을 내리신 건가요? 아니면 우연히 내가 운이 없어서 이런 고통을 겪는 건가요? 도대체 무엇인가요?”

나는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 타인은 무슨 말로 위로할 지 어려운 고통, 정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고통을 만날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던 사르밧 과부에게 일어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는 이 시간 되길 바란다! 우리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말씀이 알려주시고 요구하시는대로 하나님께 순종의 반응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째, 내 손이 비었을 때,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왕상 17:9-11).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머물라고 명령하신다. ‘사르밧제련소’, ‘정련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장소는 엘리야의 믿음과 과부의 믿음이 시험받고 정결케 되는 영적 용광로임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곳에서 한 과부를 찾아가라 하신다. 과부는 성경에서 종종 사회적 약자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데 그런 존재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으라고 하신다. 과부에게 떡을 만들어 달라고 말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달한다. 14절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4). 밀가루와 기름이 비가 올 때까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는 여인에게 좋지 않은 상황에 주목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여인의 반응이 무엇이었나? 15절에 나온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왕상 17:15). 결과가 무엇이었나? 16절에 나온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6).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약속대로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돌보심이 엘리야를 돌본 가정에 나타났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신다. 그런데 그 공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진 공급이었다. 또한 엘리야라는 외인을 환영한 가정에 주어진 공급이었다. 이 공급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 날 지속되었다. 순종하고 환대하는 가정에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풍요로움이 나타났다. 사르밧 과부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마르지 않는 가루와 기름을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축복합니다.

둘째, 고난을 만났을 때,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과부와 그녀의 아들은 엘리야와 함께 하나님의 기적적인 공급하심을 맛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은혜 중에 있을 때 충격적인 비극이 일어났다. 바로 과부의 아들이 병중에서 죽은 것이다. 문은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단순한 번영신학을 깨뜨린다. 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선지자를 섬겼다. 그런데도 비극이 찾아왔다. 왜 그런가? 믿는 자라고 해서 고난이 피해가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은 믿는 자를 연단하여 정결케 만드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르밧제련소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 여인은 시련을 통해 영적으로 더 정결해지고 있다. 여러분 가운데 이 과부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분의 선하신 손과 신실하신 공급을 누리고 있었는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고난과 슬픔을 만난 분이 계시는가? “하나님, 왜 지금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라고 묻는 분이 계시는가? 그렇다면 기억하시기 바란다. 고난은 반드시 죄로 인한 것이 아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6문은 나는 하나님이 내가 이 슬픈 세상에서 겪는 모든 역경을 선으로 바꿔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나아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능히 이 일을 하실 수 있으며, 신실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하십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과도하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여러분의 믿음을 정련시키기 위해 주어진, 궁극적으로 유익하고 의미있는 터널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정련의 불이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잃은 비극은 그녀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선명히 드러내기 위한 영적 제련소였다.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을 고난 속에서 정결하게 하신다. 은장이가 은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듯,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날 때까지 우리를 다듬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고난의 터널을 믿음으로 통과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셋째, 희망이 없어 보일 때, 부활의 하나님을 신뢰하라!

아들의 호흡이 끊어진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인은 엘리야 선지자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 원망에 대해 변호의 말을 하기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대범한 행동으로 반응한다.

과부는 죽은 아들을 놓지 못하고 품에 안고 있었다. 엘리야는 그 아들을 달라고 하여 받아 안고는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방에 올라가서 누였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한 선지자 엘리야!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비가 멈추게 한 선지자 엘리야! 이제는 절망 속에 몸부림치는 여인을 위한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간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락방은 은신처이면서, 종종 기도나 쉼의 장소였다. 지금 다락방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고통스럽게 부르짖었다. 자신의 방문이 이 가정에 복이 되길 원했었는데, 왜 갑자기 거대한 고통이 찾아왔는가? 엘리야는 하나님의 의도를 다 알지 못하기에 과부 못지 않게 고통스러워하며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곡히 기도한다. 깊은 상실과 커다란 고통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할 게 아니라, 그 상황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드려야 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아이의 혼이 그의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22절에 나온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왕상 17:22).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의 간절하고 진실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다.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와 살아나게 되었다. 우리 하나님은 신자의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를 들으실 때, 분명한 목적을 가지실 때,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행하시는 것이다. 사망의 슬픔을 안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던 선지자가 이제 부활의 기쁨을 안고 내려온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아들의 부활을 알린다.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보고서는 진정한 믿음을 갖지 못했던 여인이 아들의 부활을 통해서 온전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이제 이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세상에 유일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된 것이다. 아이의 부활 장면은 장차 올 더 큰 부활을 보여주는 모형으로 역할을 한다. 엘리야는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죽음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망을 이기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써 사람들을 위한 영생을 쟁취하셨다.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고 무서운 존재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다. 십자가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기에 죽음이 그리스도인을 영원히 지배하지 못하며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공급의 하나님을 넘어, 시련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넘어, 우리가 살릴 수 없는 것을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이시다. 세상이 그것은 죽었어. 그것은 끝났어라고 선언할 때, 하나님은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하시며 역전시키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입술의 원망이 믿음의 고백으로!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르밧에 계시는가? 통이 비어 더는 길이 없어 보이는 가난의 사르밧인가? 과거의 죄책감과 상실의 고통이 불붙는 듯한 연단의 사르밧인가? 아니면 모든 희망이 멎은 심장의 박동 없는 다락방 같은 곳인가?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빈 통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믿음은 고난의 불 속에서 다듬어졌다. 하나님의 능력은 죽음의 다락방에서 나타났다.

여러분의 손에 마지막 한 줌의 가루가 있다면, 그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란다! 도망치고 싶은 고난의 불을 만났다면, 그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키실 은장이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란다! 죽은 것 같은 희망을 품에 붙들고 있다면, 기도의 다락방에 올라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시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빈손을 채우시고, 우리의 마음을 단련시키시며, 죽은 존재를 살아 있는 존재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지금은 입술에서 원망의 말이 나올지라도, 장차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믿음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것을 기대하시기 바란다!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을 때라도 말씀대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를 위해 일하심을 체험하고 간증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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