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홈  >  시민공동체  >  설교요약
  제  목 : 20190728 십자가 (누가복음 23장 26절 – 38절) 조회수 : 1324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9-07-30

주님은 사형 선고를 받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 십자가에 달리러 가신다. 그 길은 고통의 길이다. 슬픔의 길이다. 하지만 주님이 가신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과 승리의 길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육신적으로는 고통스러워도 당당히 가셨다.

Ⅰ. 십자가의 길 (26절)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불의한 공권력에 희생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항 한 번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철저히 순종하셨다. 성경은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갔다’ 라고 전한다(26절). 그러나 실상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신 분은 주님이시며,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간자들이야말로 죄에 이끌린 당사자들이다. 예수님은 신성모독죄와 황제 모독죄를 이유로 사형을 언도받으셨지만, 사실 이 죄목은 예수님께 사형 판결을 내린 자들에게 지워져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오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끌고 가던 자들은 유월절을 보내려고 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순례자 시몬을 붙잡아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26절). 표면적으로는 그가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하지만, 이 일은 그에게 큰 복이 되었다.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러 왔다가 하나님의 어린양을 대면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와 동행했을 것이다(막15:21). 로마서에서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 즉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언급했다(롬16:13). 시몬의 가정이 초대교회가 성장하던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도 그분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큰 복을 내려 주신다.

Ⅱ. 우는 여인들을 오히려 위로하시는 예수님 (27-31절)

많은 여인들이 울면서 예수님을 따랐다(27절). 그동안 예수님께 몰려들었던 수많은 사람의 행방에 대해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진실로 사모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분을 위해 눈을 흘린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심판 날에 대해 경고하셨다(28-30절). 예루살렘 함락뿐 아니라 인류 최후의 날에도 심판이 엄중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을 걱정하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의연한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님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순종의 태도를 발견한다. 주님은 사람과 상황에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셨다. 그리고 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진심으로 염려하셨다.

Ⅲ. 죄인과 같이 낮아지신 예수님 (32절)

두 명의 사형수가 예수님과 함께 끌려갔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신을 죄인과 같이 낮추셨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죄인과 동일시하신 것이다.

우리는 본문의 두 사형수와 같이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대속의 은혜로 죽을 운명에서 벗어났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죄인과 같이 낮아지는 데까지 자기 자신을 내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자. 우리에게도 주님과 같은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순종의 모습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주님이 함께해 주실 것이다.

Ⅳ. 구원을 말하는 사람들(33-43절)

본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이다. 예수님께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했던 조롱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고 오히려 구원의 능력을 비웃는다.

1>자신도 구원하라는 관리들(33-35절) 관리들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비웃었다. 그가 남을 구원했으니 그리스도라면 자신도 구원하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35절). 이는 다른 사람들을 가난과 질병과 무지와 귀신들림에서 구원했지만 정작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는 조롱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신 것이 아니라 안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나 구원하라’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2>스스로 구원하라는 군인들(36-38절) 군인들이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내밀었다(36절). 이는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 가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행위다. 그들은 또한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라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37절)라고 말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그리스도라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맞고, 이방인의 관점에서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라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십자가 현장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우주의 통치자요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조롱했다.

3>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는 죄수(39-43절)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마저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39절). 라며 예수님을 비방했다. 이번에도 구원의 문제다. 놀라운 것은 주님은 십자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에도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한 영혼의 구원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셨다는 점이다. 예수님을 비방하는 죄수가 있었던가 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40절)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한 죄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자기 죄에 대한 보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40-41절). 그는 본문에서 유일하게 주님께 믿음을 고백한 사람이다.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다(42-43절).

‘저와 우리는 구원하라’ 라며 주님을 조롱했던 자는 자기 죄 가운데서 죽어 갔다. 하지만 자기 죄를 겸손히 인정하고 구원을 요청한 죄수는 영생을 얻었다. 오늘날 철학과 예술, 그리고 다른 종교들에서 구원을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구원은 주님께만 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신 주님을 기억하자. 그 놀라운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

  이전글 : 20190721 죄 없는 예수님께 내려진 사형 선고(누가복음23장1절-25절)
  다음글 : 20190804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누가복음 23장 33절 – 43절)
이전글 다음글          프린트하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