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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50504 헌신의 향기 (마태복음 26:6-16) 조회수 : 123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5-05-07

20250504 헌신의 향기 (마태복음 26:6-16)

오늘 본문은 가슴 아픈 대조를 보여준다. 한 편에서는 예수님께 최고의 드린 여인이 있고, 다른 편에는 예수님을 팔아버린 제자가 있다. 예배하는 자와 배신하는 자. 충성에 이끌린 자와 탐욕에 이끌린 자가 대조되고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신다. “너에게 나는 얼마만 한 가치가 있느냐?” “너는 너의 귀한 것을 드림으로, 나의 구원계획에 동참하고 있느냐?” “사람들이 반대 방향으로 너희를 끌어당길 때도, 나의 뜻을 분별하고 따르고 있느냐?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배신과 헌신의 주인공들 가운데 우리는 어떤 사람과 더 가까운가?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여인의 모습인가? 아니면 은전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뜨는 가룟 유다의 모습인가? 우리의 인생 여정의 끝에 우리는 과연 누구의 모습에 더 가까운 모습이 될 것 같은가? 오늘 말씀의 도전을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오늘 말씀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첫째, 내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팔지는 않습니까?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26:14-16).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스스로 대제사장의 관저로 들어가서 주님을 배반한다. 그는 우연히 죄에 빠진 게 아니라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했다. 그의 질문은 대담하고 거침이 없었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26:15). 이것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거래다. 메시아를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기고 받은 대가는 은 삼십 이었다. 은 삼십이 어느 정도의 돈인가? 출애굽기 21:32을 보라!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21:32). 은 삼십은 소에 들이받혀 죽은 평범한 종의 몸값이었다. 우주의 왕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런 하찮은 가치를 받고 팔아버린다. 무한한 가치를 가지신 그리스도를 더 굴욕스럽게 만드는 짓이다. 가룟 유다는 하찮은 이익을 얻기 위해 영원한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을 배신한 어리석고 안타까운 사람인 것이다.

오늘 본문은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경고한다. 유다는 예수님을 순종하고 따라갈 주님으로 보지 않았고, 자기 목표를 위해 이용할 도구로 보았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대가를 원했다. 예수님을 통해 영향력을 갖기원했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원했다. 그리고 돈까지도 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다만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 될 수 있는 거다.

오늘 본문에서 마태는 유다의 범죄를 더 끔찍하게 보이는 자리에 배치되었다. 그의 배신 직전에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담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일이 나온다. 여인은 가장 귀한 것을 바쳤는데, 유다는 예수님을 가장 하찮은 가격에 팔았다. 여인은 사랑으로 인해 막대한 물질을 소비했는데, 유다는 사랑을 배신하고 하찮은 물질을 획득했다. 말씀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여인처럼 될 것인가, 가룟 유다처럼 될 것인가?

예수님을 평안을 위한 보험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삼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릴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예수님은 모든 걸 팔아서라도 사야 할, 밭에 감추인 보화, 극히 값지고 좋은 진주이시다. 예수님과 가치를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 주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내게 가장 귀하고 가치 있고 행복한 일입니다!“라고 진실하게 고백하며, 그 고백대로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란다.

둘째, 내 소중한 것을 드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26:7-10).

한 여인이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어왔다. 그녀는 매우 값비싼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져와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옥합 자체가 귀족들의 물건이었고, 향을 보존하려고 돌을 깎아 만든 사치품이었다. 그 안에 담긴 향은 아마 수입산 나드향이었고, 수백 데나리온의 가치를 지녔을 거다. 손님을 위해 기름을 붓는 것도 고귀한 대접이었던 시대인데, 향유를 부은 것은 환대를 넘어 희생이었다. 이 여인은 소유 가운데 남는 것을 바친 것이 아니라, 자기 소유 중 가장 값진 것을 바친 것이다. 그녀는 값을 따지지 않고, 온전한 헌신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은 예수님의 수난을 준비했다. 자신은 몰랐지만, 그녀는 다가올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정성스럽게 준비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세상은 그녀의 헌신을 낭비라 여겼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그녀의 행동을 보고 못마땅해하며 분개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행동을 좋은 일”, “아름다운 일이라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돈 낭비라고 생각한 것을, 예수님은 예배로 보신 거다. 하늘의 가치관은 이 땅의 가치관과 다르다. 여인의 향유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행위가 되었다. 그녀는 세상을 위한 새 언약을 여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녀가 보물을 쏟아부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의 보물같은 피를 흘려주셨다. 그녀가 옥합을 깨뜨렸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찢겨주셨다. 그녀가 낭비처럼 보이는 헌신을 했을 때, 예수님도 하나님 아들의 특권을 버리고 모든 인류를 위해 헌신하셨다. 결과적으로, 이 여인의 행동은 온 천하 어디서든 전파되어야 할 미담이 되었다. 다함없는 사랑과 아낌없는 헌신이 구원역사의 바퀴를 전진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가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릴 때,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의 손에 붙들려 구원 역사에 동참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란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순수한 헌신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며, 하늘의 기쁨이 우리를 가득 채우는 것을 목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사람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주목하고 있습니까?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26:14-16).

왜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주었나? 대제사장에게 협조하는 것이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한다고 믿은 것이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죽을 것이고, 다시 죽음에서 살아날 거라 하신 말씀을 믿지 못했고 수용하지 못해 배신을 결심한 것이다. 물론 그의 배신으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으로 나아가시게 되었고, 구원을 위한 죽음을 죽으시게 되었다. 하지만 가룟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돕는 행동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는 당사자가 꼭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오해했고, 예수님을 배반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내모는 악역을 감당한 것이다.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것은 마치 풍향계를 따르는 것과 같다. 풍향계는 바람이 부는 대로 빙빙 돈다. 인간의 의견과 사회적 상식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과거에는 흡연이 긴장을 풀어주고, 체중조절에 도움이 된다며 의사가 담배를 권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폐암과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대표적 원인으로 여겨져 금연이 권장되고 있지 않나? 반면에 하나님의 뜻은 폭풍우가 몰아쳐도 항상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변함이 없다. 그리스도인은 변하는 시류가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인 것이다. 세상은 탐스러운 보상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침묵과 타협과 심지어 배반을 요구한다. 사회적 평판과 동료의 기대와 편안한 인간관계를 위해 하나님의 뜻 따르기를 포기하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붙드신 예수님을 닮길 바랍니다! 세상의 조롱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일을 행한 베다니의 여인을 닮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갈망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갈망하시기 바란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갈피를 못 잡는 풍향계 같은 사람을 주목하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한이 없으신 나침반 같은 하나님을 주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결론: 헌신의 향기가 퍼져나가게 하십시오!

인생의 길은 결국 두 갈래 중 하나다. 하나님을 수단 삼아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 길이든지, 자신의 삶을 깨뜨려 하나님께 드리는 길이든지, 우리는 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여러분의 손에는 지금 무엇이 들려 있나? 짤랑거리는 은전인가, 아니면 깨어진 옥합인가? 여러분은 은전을 움켜쥔 유다의 손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향유를 부은 여인의 손을 가질 것인가? “주님을 따르면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이제는 성숙한 믿음으로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란다. “당신이 나의 주님이시기에, 내 모든 것을 드립니다!” 내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려 주님께 드릴 때, 우리의 인생도 베다니 여인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 향기로 남게 될 것이다.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옥합을 깨뜨리고, 아낌없이 사랑을 부어드리십시오! 폭풍이 몰아쳐도 언제나 한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주님의 뜻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가 되십시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찬양이 단지 입술에 발린 말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비추는 참된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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