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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제 9화-유엔 북한 인권 보고서-북한에서 예수를 믿는 다는 것 | 조회수 : 761 |
작성자 : 동문수 | 작성일 : 2015-02-21 |
제9호 2014년 2월 16일 북한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처벌
한 보고는 보위부에서 종교행위를 밝혀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데, 비밀리에 종교행위를 한 사람들을 밝혀내면 상을 준다거나, 그리고 이 국가 보위부 요원을 종교인처럼 훈련을 시켜서 기도회모임에 침투시키기도 하고 종교지도자 행실도 하게하면서 그렇게 가짜 지하교회를 만들어서 모임을 주선하여 함정수사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심문을 하고 이 기간 동안에는 고문이 따르기도 하며, 또한 기독교인들을 밝혀내기 위해서 국경지역의 한국교회들을 아주 체계적으로 행동들을 모니터하고 중국으로부터 재입국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왜 그 관리들은 기독교인들이 정치적으로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가?’ 에 대한 답변을 북한 내에서 비밀리에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기독교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첫째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수령에 대해서 진정성을 가지고 숭배하지 않고 있다. 다른 이데올로기에 심취되어있고 그래서 이것이 사회의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이 기독교인들은 남한과 미국과 결탁이 되어있는 간첩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공산주위를 종식시키려고 하는 강력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이미 동유럽과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끝내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폴란드에서는 로만 캐돌릭 교회가 그 강력한 한 예로 들 수가 있다. 심지어는 리콜라이 챠우세스크시대를 루마니아에서 끝나게 했다고 보고 있고, 헝거리안 프로테스탄트 목사인 라즈로토크스가 이러한 것들을 시작하도록 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로부터 퇴거하라는 정부의 지시에 교회가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일들을 함으로써 루마니아의 챠우세스크 시대를 종식시키는 시동을 건 사람이다.
한국이나 미국선교사와 접촉한 일이 있는 강제북송 자는 더욱 심한 문초를 당하고 감옥에 보내어 진다.
-한 증인은 설명하기를 그녀가 북한에 강제 송환된 이후에 중국에서 교회에 갔었는지 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북한을 떠나 중국에 갔던 또 다른 때에도 잡혀서 그녀가 기독교신앙을 가졌었는지 에 대해서 1년 동안 구금되어 조사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가 그녀를 고발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자백을 거부했고 그래서 11교화소에 보내어 졌다.
-티모시의 아버지는 중국에 있는 ‘지하교회’에서 기독교를 배웠다; 그리고 2003년, 그는 39명의 다른 북한 기독교인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북한에 강제 송환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요덕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의 아버지가 체포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 14살이었던 티모시 역시 일년 동안 강제 노동훈련소로 보내졌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되어서 북한에서 몇 년간 비밀리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임무를 목숨을 걸고 수행했다. 그는 또한 기독교를 신봉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행을 선고 받은 여러 동료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했다.
-Mr. A의 두 자매들은 모두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활동들 때문에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한 명은 친구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발각되었고, 성경을 소지한 죄가 더 하여져서 수용소에서 (교화소) 13년 형의 옥살이를 하였다. 또 다른 자매는 중국에서 잡혔고, 극심한 굶주림과 끔찍한 생활 조건의 결과로써, 첫째 여동생은 감옥 안에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Mr. A씨가 감금 3년 이후 그녀의 자유를 위해 상당한 뇌물을 지불한 이후에 겨우 풀려나서 구조받게 되었다. 다른 여동생은 중국에서 기독교를 신봉했고 또한 남한으로 도망칠 시도를 했다는 것이 발각되었기 때문에 정치범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녀는 요덕수용소로 보내졌고 그 이후로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게 되었다.
-2006년, 중국 당국은 김송주씨의 어머니를 북한으로 강제 송환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북한의 카운터 파트에게 그의 어머니가 중국에서 기독교를 신봉했다고 북한에게 정보를 주기도 했다. SSD는 김씨의 어머니를 교화소 3년형을 선고하기 전에 그녀를 6개월 간 심문했다. 그러나 SSD에 감금된 동안 가혹한 고문과 굶주림 때문에 그녀는 감옥으로 바로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쇠약했다. 경찰은 대신에 그녀를 지역 병원으로 보냈고, 거기에서도 그녀는 침대에 묶여있게 되었다. 그의 삼촌은 그녀를 방문하려고 갔으나 그녀는 그가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쇠약했고, 결국은 김씨의 어머니는 병원 침대에 묶여서 결국은 굶어 죽고 말았다고 했다. MPS는 그녀의 몸을 회복시킬 수 없었기에 그녀의 친척들에게 조차도 죽음을 알리지 않아서 시체조차도 찾지를 못했다.
이렇게 기독교를 신봉하였다는 이유로 교화소 관리소 수용소에 보내어 져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남한의 기독교인들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증인은 2011년, 량강도에서 KPA로부터 탈출했는데 동료 신자가 고문에 견디지 못해서 그녀의 이름을 알려 주어서 구속이 되었었다. 그녀와 다른 증인들은 성경을 소유하여 잡힌 사람들이 조사 과정에서 얼마나 심하게 고문당하고 어떤 경우에는 고문 이후에 처형되는 지를 위원회에 증언 했다.
이상과 같이 북한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얼마나 심하게 자행하고 있는 지를 정리해 본다면, 평양에 만이라도 아주 제한적으로 종교가 허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이 알게 된 것은 북한에서는 신앙의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김일성과 그 세습 자들을 둘러싼 개인 숭배와 역행하는 신앙은 절대로 양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종교를 신봉하려다가 심하게 탄압당하고 또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고, 결과적으로는 북한에서 종교를 신봉하는 인구는 1950년에24%로 부터 2002년에 0.6%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 스스로가 발표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체제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북한 주민들에게는 전혀 예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아니하는 이들이, 봉수교회를 세우거나 하는 일에 대해서 분명한 것은,
1)단지 돈을 목적으로 개별교회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하며,
2)또 하나는 그들의 포용성을 나타내려는 의도도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북한을 바라보고 북한의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서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저 관대하게만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선교의 정책이 될 수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교회나 정부나 각종 단체들이 정책을 수립할 때에 면밀하게 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드러진 특징들 가운데 절대적인 정보 독점과 조직된 사회생활의 전체적 통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증인의 증언에 따라, 위원회는 북한에서는 의견, 표현, 정보와 단체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자유뿐 만 아니라 사상,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거의 완벽하게 박탈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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