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소박(素朴)한 꿈! | 조회수 : 135 |
작성자 : 박재준 | 작성일 : 2025-01-06 |
소박(素朴)한 꿈!
한때는 ‘웰다잉(well-dying)’이라는 신조어가 언론매체의 지면이나 화면을 한가득 장식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이 화제(話題)는 일시적으로 반짝하는 바람의 흔적만 남기고는 수면 아래로 숨어버렸다. 최근 2년여 사이 개인적으로 기쁨과 슬픔의 순간들이 몇 차례 지나갔다. 나의 수필 ‘앵두나무 우물가’의 주인공이었던 삼촌의 소천(召天), 한전 입사 동기의 타계는 슬픔의 순간들이었고, 변호사 며느리의 모교 (이화여대) 법학박사 학위수여식은 기쁨의 순간이었다.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성격의 자리는 아니었다. 문득 ‘길사(吉事)에는 빠지더라도 흉사(凶事)에는 꼭 챙기라’는 옛 어른들이 권면의 말씀이 떠오른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도리랍시고 문자나 조의금 정도 보내는 것으로 불참의 뜻을 밝히긴 했으나 마음 한편에는 왠지 송구스러움이 남아 있을 뿐이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라’는 격언은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요즈음 나에게는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화두 하나가 있다. 죽음을 품위 있게 맞이할 방법을 궁리해두고 사지가 튼실할 때 미리 준비해 두자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가는 그 길을 나라고 비켜갈 수는 없을 터이고, 이왕 맞이할 거라면 나만의 룰(Rule)을 정해서 차근차근 준비하면 될 일이다. 꺼집어내기조차 싫은 말이지만 ‘비명횡사(非命橫死)‘만은 피했다가 하나님과 가족·친지들 앞에서 조용히 그리고 떳떳하게 임종의 침상에 임하고 싶은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존엄사), 장기기증, 시신의 해부용 기증 등 따위는 가족들 간에 논의가 잘 안 되어 숙제로 남기기로 한다.
첫째, 침상머리맡에는 평생에 손때에다 눈물흔적도 서려 있는 책(성경전서, 국한문 혼용,1986년 판)을 두고 묵상하려고 한다. 말년에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도 않았다(신명기34장7절)’는 믿음의 선진 모세를 본받아 글 읽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안력(眼力)을 주십사 하는 것을 기도 제목으로 삼는다.
둘째, 침상 양옆에는 10개 정도의 지팡이(柱杖子)를 두고 싶다. 나의 수필 ‘나무 지팡이 수집 천 개를 넘기면서’에서 언급했던 ‘지팡이 덕목(德目)’ 세 가지를 사족(蛇足) 삼아 나열해본다.
-.강직성 = 부러질망정 휘어지지는 않는다.
-.눈요깃감 = 부정적인 동정심이 아니라 호기심과 감탄사를 끌어낼 수 있다.
-.친밀감 = 침상 곁에 둘 정도로 매력덩어리인 데다 손잡이는 장난감 구 실을 할 수 있다.
그렇다. 오롯이 외로움과 두려움을 달래줄 수 있는 현실적 반려자(伴侶者)는 손때가 더덕더덕 묻은 이 지팡이 외에 또 무엇이 있으랴? 전국구로 뛰어다니며 수집하던 때의 아름다운 추억과 다듬고 손질하던 순간의 교감 흔적이 잔뜩 묻어있을 뿐 아니라 자연의 외경스러움에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 명품들이 아닌가.
셋째, 초상화 한 점이다. 이름하여 영정(影幀) 사진 대용품(代用品)이다. 2003년 6월12일, 한전에 같이 입사한 효천 신성현 화백이 그려준 빙그레 웃는 구레나룻 모습의 얼굴 그림이다. 가족 외에는 누구도 찾지 않을 병상에서의 쓸쓸함을 극복하는 데는 젊은 날의 풋풋하고 해맑게 웃는 모습에 위로를 받으며, 힘겹게 올리는 입 꼬리로 부를 찬송가는 또 얼마나 기쁠까? 생각해본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석학들의 고견을 종합해보면, 코로나19라는 역병(疫病)은 치사율은 낮고 ‘독한 감기’수준의 유행병이어서 인류가 손잡고 가야할 동반자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다소 위로도 되고,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솔직히 드러낸 것이 공감의 폭을 넗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치료 처방에 천문학적인 금전을 쏟아부었지만, 답(答)은 신통치 않아 보인다. 결국 망자(亡者)나 그 가족끼리 운명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준비하면서 최선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말하자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인 셈이다.
우연히도 눈에 띈 2022년 2월 8일 자 조선일보 1면 헤드라인에는 ‘각자도생 방역’이란 글이 섞여 있었다. 아니 각자도생이라니, 나한테도 신기(神氣)가 있었나?
"
전체댓글 1
이전글 : 25년 교회표어 카톡 이미지 | |
다음글 : 1월 첫째 주 감사제목 | |
이전글 다음글 프린트하기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