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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마누라 점수 따기’ | 조회수 : 298 |
작성자 : 박재준 | 작성일 : 2025-01-21 |
‘마누라 점수 따기’
보훈의 달이 가까우면 괜스레 바쁜 척한다. 지축이 흔들리지 않는 한 매년 남녀가 한자리에 모인다. 일명 ‘콧구멍 바람 쐬기’행사다.
월남참전에 참전한 국가유공자 친구 덕에 할인 금액으로 충주 보훈휴양원에서 1박2일을 쉰다.
자가용차의 연식에 우리의 몸도 편승하는 것 같다. 근자에 차 몰기가 무섭다며, 대안으로 집합장소를 KTX 역 부근으로 바꾸자고 불쑥 내민다. 이번 모임에서 최적의 장소를 찾자고 백방으로 설득했지만 뻗은 다리를 오므릴 기미가 전혀 안 보여 직권으로 묵살하고 말았다.
작년의 악몽이 떠올라 끼니 전체를 휴양원 식당에 주문하기로 했다. 이건 오로지 회장의 철권이다. 탄핵해도 좋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랑데부 시간은 가까워지는데 두 집에서 이런 저런 사연으로 불참이라고 하니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약을 주선한 친구에게 급히 식당 주인과 협의해보라고 일렀더니 돌아온 답신이 가관이었다. 닭을 먼 데서 특별히 주문한 것이어서 예약 변경이 불가한 데다 이미 가마솥에서 목욕을 시키는 중이라 더더욱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는 두 마리는 어쩌라는 것인지, 언뜻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위에 먹방 친구들이라도 있다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들을 수 있을 텐데….
오후3시 체크인 시간이 가까워지니 그립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나타난다.
지난 1년이 몇 년이라도 되는 양 반가운 인사에 두서없이 화재를 끄집어내니 졸지에 조용하던 로비 전체가 도떼기시장 분위기다. 우선 열쇠를 받아 카터에다 짐을 싣고 2층 방으로 올라갔다. 남녀유별이라고 복도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는 방이었다.
방을 휙 둘러본 다음 화장실부터 살폈다. “와우! 큰방엔 비데가 있네”라고 하니 석수란 친구가 대뜸 “뭐! 빈대가 있어”라며 언성을 높인다. 졸지에 좌중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래? 빈대가 많아? 하고 되묻기까지 한다.
아니, “비데가 좋더라”고 하니 “빈대가 그렇게 많아”로 파고든다. 그렇다. 내가 틀니이니 말이 좀 샜을 수도 있겠지만 듣는 친구도 가는귀가 좀 먹은 건 아닌지?. 이쯤 되면 한마디로 * ‘콩칠팔-세삼육’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아차린 친구들이 앙천대소(仰天大笑)하며 뒤집힌다. 그제야 한바탕 웃음꽃 만발이다.
한참 후 식당에서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넓은 홀에 우리식구는 모두 해서 여덟 명. 엑스트라(?) 두 마리 처분 건으로 걱정이 앞섰으나 기우도 잠깐, 모두 다 숟가락질 삼매경에 빠져든다. 꼭 며칠 굶은 이리처럼 코를 박고 먹는데, 속도는 느림보 모드다.
근년에 두 친구가 타계했으니 네 명이 빠진 꼴이다. 회장 직을 내려놓겠다고 끄집어내기도 민망하다. ‘한전입사동기회’는 어쩔 수 없이 최후 세 명이 남을 때까지 운영하고, 그 뒤론 자동 해체해야겠다. ‘세 명’을 고집하는 이유는 혹시 노익장들이 싸우면 말릴 심판자라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재(主宰)하면서 정한 것이 있다.
첫째, 마누라 손가락에 물을 안 묻히게 할 것
둘째, 향후 교통편은 본인이 책임질 것(헬기 사용도 가함)
셋째, 장소는 이 곳! “통일한국” 때는 국토의 중앙으로 할 것 등이다.
분위기도 살릴 겸 충청도 버전으로 한 마디 했다.
“마누라 점수 따기! 참 쉽지 유~~”
이날 밤도 한 초바리 걸치니 꿀맛 같은 잠이 나를 데리고 간다. 참 아이러니해도, 우리의 우정은 이렇게 아름다웠다.
2024년 10월1일 세일 박재준 씀
**콩칠팔-세삼육 은 은어로 노름판에 기본 룰도 모르는 초짜를 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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