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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1014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 (누가복음 15장 11절 – 32절) 조회수 : 30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10-1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제기된 불평이라는 문맥 속에서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아버지에게 엄청난 불명예를 끼치고 떠난 아들의 비참한 삶과 아버지에게로 돌아감, 조건과 단서가 붙지 않는 아버지의 환영은 이 비유의 특징이다. 이를 통해서 세리나 죄인들과 같이 잃어버렸던 사람을 다시 회복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르치신다.

Ⅰ. 돌아온 둘째 아들(11-24절)

한 집에 두 아들이 있었다(11절). 그런데 둘째가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였다(12절). 둘째는 먼 나라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궁핍에 빠졌다(13-14절). 자력으로 일어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께 돌아와 은혜를 구하였다(15-19절).

아버지 생전에 상속을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는 뜻이고 매우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아버지는 재산을 나눠주었다. 배반할 자유가 없이는 참 사랑도 없음을 알고 계셨기에 하나님도 우리가 그릇된 길을 가더라도 놔두실 때가 있다. 하지만 용인이 늘 승인은 아니기에 스스로 속이지 않도록 성찰하고 점검해야 한다.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 나간 아들은 즐겁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나가 보니 아니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안개처럼 사라진다. 돈이 있으면 기쁨도, 즐거움도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세상은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아닌 육신의 쾌락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쾌락은 삶을 타락하게 한다. 쾌락은 기쁨이 아니다. 타락으로 가는 길이다.

둘째 아들은 가진 것을 다 잃었을 때 자기 죄를 보았고 아버지 집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더 나아가 아버지의 조건 없는 영접을 경험한 후에는 사랑을 받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어디에나 둘째 아들 같은 사람들이 있다. 맘대로 나갔다가 원할 때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의 한계에서 은혜를 구할 줄 안다. 그래서 오히려 둘째 아들 같은 사람들이 은혜를 잘 받아들인다.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죄의 유혹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늘 죄의 유혹은 가득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는 회복의 기회가 있다. 바로 참된 회개의 기회다. 넘어지고 어려울 때 주저앉지 마시고 진정으로 회개하자.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주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둘째 아들이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아들을 발견하고 맨발로 달려갔다(20절). 아들은 떠났지만 아버지는 보내지 않았기에 돌아올 기약이 없던 아들을 아버지는 항상 기다릴 수 있었고 남루한 차림이었지만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고 체면을 팽개치고 달려갈 수 있었다. 이것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다. 아들은 고민하다 아들 자격이 없다고 말하였지만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아들로 회복해 주셨다. 세상에는 자비가 없지만 아버지에게는 자비가 넘친다. 아들은 용서를 구하지만 아버지는 용서를 언급하지 않았다(21-24절). 이미 수천 번도 더 용서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죄인이 돌아올 때 보이는 하나님의 반응이다.

Ⅱ. 받아들이지 못하는 첫째 아들(25-30절)

맏아들은 그날도 밭에 나가 일하고 돌아왔다(25절). 종일 일해서 기진한데 멀리서 풍악 소리가 들려왔다. 문제아 동생 녀석이 돌아온 것이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충성했는데 아버지가 염소 한 마리도 주지 않았다며 원망하였다(29절). 안타깝게도 그는 자녀가 아닌 종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주인으로 대했다. 이것은 충성이 아닌 낮은 자존감이고 은혜 의식이 아닌 공로 의식과 피해의식이다.

그는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들과 삼켜 버린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원망하였다(30절). 그의 모습은 선지자 요나와 비슷하며(욘4:1,4,9) 그의 논리는 포도원에 먼저 와서 더 많이 일한 일꾼들의 항변 논리와 비슷하다(마20:1-16).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자기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려고 끊임없이 애썼다. 반면 동생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무자비했다. 그는 동생의 귀환을 함께 기뻐해야 마땅했다. 이것은 의무라기보다는 형제로서의 성정, 마음 태도를 지적하는 말이다. 동생에게 조차 아무것도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이들과 공감하며 사랑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아버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형제를 경쟁자로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은혜가 아닌 공의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아버지의 지나친 관대함이 둘째의 방종을 초래했다는 말이다. 마음에 은혜가 없으면 죄인뿐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Ⅲ. 두 아들의 아버지(31-32절)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 큰아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31절) 아버지는 큰아들과 아버지가 항상 함께 있는 관계이며 아버지의 것이 다 그의 것이라고 응답한다. 그 어떤 보상보다 아버지와의 동행이 최고의 복임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받아야 할 후계자다. 더 나아가 못난 둘째를 은혜로 받아 주고 돌봐주어야 할, 아버지의 대리자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32절) 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돌아온 둘째를 이 아들이라고 부르지 말아라. 네 동생이다. 너도 네 동생을 사랑해주면 안 되겠니” 이런 뜻이다. 돌아온 죄인이 다름 아닌 “네 동생”이라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가정이나 교회 회사에서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큰 아들 같은 사람에게 은혜와 사랑을 말씀하신다. 먼저 네가 아버지의 은혜를 경험해야 그 은혜가 동생에게로, 그리고 이웃에게로 흘러갈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첫째들이 집을 나간다. 교회와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교회를 등진다. 반면 집 나갔던 둘째들이 돌아온다. 은혜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교회는 첫째도 둘째도 행복할 수 있는 아버지의 집이다. 둘째는 스스로 아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아들로 회복해주셨다. 잔치를 베풀어 아들의 귀환을 축하했다. 방탕한 아들이 절대 갚을 수 없는 도에 넘치는 이 허비하는 사랑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며 죄인의 사죄를 냉소했던 종교 지도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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