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홈  >  시민공동체  >  설교요약
  제  목 : 20190324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 (누가복음 19장 28절 – 48절) 조회수 : 1474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9-03-22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다. 이사야는 예수님을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사9:6)으로 소개한다. 특히 “평강의 왕”이란 표현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려 준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 된 죄인들을 대속의 죽음으로 화해시켜 화평을 가져오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28절) 가셨다.

Ⅰ.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심(28-40)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막10: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앞장을 서서 걸어가시는 모습이 얼마나 엄위했으면 뒤따르는 사람들까지 두려워하였겠는가? 죽음만 바라보시고 무겁게 걸어가시는 주님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모든 사람이 잘 살고 오래 살고 할 수 있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소원이요 목적이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바로 그 죽음이 삶의 목표가 되어 있었다. 속죄의 죽음 대속의 죽음이다.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어떻게 나귀 새끼가 있을 것을 아셨을까? 예수님께서는 그 일의 현장에 있지 않았으면서도 사실을 아시는 것을 성경에서 여러 번 읽게 된다.

요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4:28-29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누가복음의 기록은 모든 일이 예수님의 뜻 가운데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의미를 제자들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요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예수께서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제자들은 예상하지 않은 일이 생겼기 때문에 당황하고 낙심하여 여기저기 흩어졌다. 그러나 이를 통하여 죄와 죽음과 사탄을 패배시키셨고, 우리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 주시고 구원자가 되셨다. 우발적인 일련의 사건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Ⅱ. 예루살렘을 위해 애통하심(41-44)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은 감람산 정상에 이르러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다.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은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아셨지만, 그들에게 닥칠 재앙을 생각하면서 연민의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예수님의 눈물은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동정의 눈물이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면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한다. 특별히 예수님처럼 자신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사람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대적하는 사람에게 연민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그를 향해 긴장감을 풀어야한다. 그를 두려워하는 동안에는 연민의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시선을 주님께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도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Ⅲ.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비판하심 (45-48)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의 분노는 의분이었다. 하나님이 성전을 허락하신 목적이 망각되고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는 장소로 전락시킨데 대한 분노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처음 시작하실 때에도 성전을 정화하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의 표현이었음을 깨닫는다.

요2:15-17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우리에게도 이런 의분이 있어야 한다. 세상적인 분노와 거룩한 분노의 차이는 세상적인 분노는 파괴를 가져오고 거룩한 분노는 변화를 가져온다. 세상적인 분노를 품은 사람은 이웃과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 바뀌지 않으니까 더 분노가 치솟고 분노가 쌓이면서 파괴를 가져온다. 그러나 거룩한 분노는 자신을 바꾼다. 거룩한 분노는 이웃을 바꾸려하거나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고 자신을 바꾸려고 한다. 잘못된 교회 관행에 분노한다면 스스로가 아름답고 건강한 교인이 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요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

  이전글 : 20190317 창조의 영성 (창세기 1장 1절-5절)-요약문
  다음글 : 20190331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누가복음 20장 1절 – 18절)
이전글 다음글          프린트하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