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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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0602 종말을 사는 지혜(누가복음 21장 20 – 38절) 조회수 : 687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9-05-31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 세상은 종말을 맞는다. 우리는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날이 오늘만큼 가까워졌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환난의 징조들을 보며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에 집중해야 한다.

Ⅰ.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행하시는 하나님(20-21절)

예루살렘은 AD 66년에 일어난 유대 폭동으로 인해 4년간 로마 군대에 포위당했다가 AD 70년에 함락되고 만다(20절).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징조를 분별했을 것이다. 실제로 AD 62년의 사도 야고보의 순교와 유대 폭동 때 예루살렘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멸망의 시기가 가까워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도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늘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행하신다(21절). 심판은 외길이 아니라 구원으로 향하기도 하는 갈림길이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오신다. 구세주로 오셨던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신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기쁨의 날이다.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막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Ⅱ. 징벌의 날 (22-24절)

기록된 모든 것(22절)이란 형벌의 날에 임하리라고 예언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 그날은 큰 환난의 날이 될 것이다. 사회에서 일순위로 보호받아야 할 산모와 유아를 양육하는 어머니들조차 화를 당할 것이다(23절). 이 징벌은 죄가 불러온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다. 은혜는 복을 부르지만 죄는 형벌을 부른다. 죄가 쌓이면 심판이 오지만 은혜가 쌓이면 회복이 온다.
이 환난 날에도 끝은 있다(24절). 그 끝이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을 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패역한 동안에는 이방인들을 구원하셨지만 마침내 이스라엘도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날에도 구원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다.

Ⅲ. 속량의 날 (25-28절)

계절과 날짜와 연수의 기준인 ‘일월성신’(창1:14) 이 흔들리면 우주적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다. 이에 따라 바다와 파도도 혼란에 빠질 것이다(25절).
자연도 심판의 날에는 질서에서 벗어난다. 자연은 창조주의 의지와 은혜에 따라 운행되는 것이지, 일정 법칙을 따라 언제까지나 스스로 순환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날에 우주적 혼란 속에서 정신을 잃을 만큼 두려워할 것이다(26절). 그런데 그 두려운 날에도 소망이 있다. 인자께서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27절). 주님은 구름 타고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행1:14). 그날에 우리는 일어나 머리를 들 것이다(28절). 십자가에 달린 어린양이 세상을 심판할 심판주로 오시는 날은 우리에게는 절망이 아닌 소망의 날이요 심판이 아닌 구원의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망할 수 없다. 주님이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Ⅳ. 무화과나무의 비유 (29-33절)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라고 말씀하셨다(29절).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걸 알듯이 말세의 징조들을 보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는 것이다(30-31절). 종말의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연을 보며 계절을 분별하듯 여러 정황을 통해 그 때를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신 모든 일이 이뤄진다고 하신 것을(32절), 우리는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장차 올 말세를 이중적으로 예언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마3:2 12:28). 예수님은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날을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이 영원히 함께할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비유에 담긴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주님처럼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그날을 기다려야 한다.

Ⅵ. 기도하며 깨어 있을 것(34-36절)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 조심’ 해야 한다(34절).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미 종말의 시대에 진입했기 때문에 우리는 잠재적 종말 상태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방탕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빠지지 않는다. 세월이 갈수록 천상을 향해야 할 영혼이 지상의 문제들에 얽매이면 세속의 덫에 걸리게 된다.
예수님은 이날을 피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시면서(35절) 동시에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라고 하신다(36절).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기도로 유혹과 핍박을 이길 수 있다. 어떻게 피하라고 하시는가? 1>‘인자 앞에 서도록’ 즉 주님의 임재 의식 속에 살아야 한다. 2>‘항상 기도’ 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3>‘깨어’ 살아가면 징조도 시기도 결국 분별하게 된다. 두려워하지 말자.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미래의 주관자이신 주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그 날을 넉넉히 감당할 것이다.

Ⅶ. 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님 (37-38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 일주일 동안에도 사역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다. 십자가만 지면 사역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날마다 성전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치셨다(37절). 우리도 주님과 같이 깨어서 살아가자.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올 것이다. 그때는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이른 아침부터 모였다(38절). 그 일주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마지막 기회였다. 잠재적 종말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언제 개인의 종말, 우주의 종말이 올지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이야말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최선의 날이다. 오늘을 사모하자. 오늘 반응하자. 오늘 헌신하자. 오늘 천국이 임할 것이다. 종말에 대해 안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자. 종말은 날짜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주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사모함으로 날마다 천국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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