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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0825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4장 13절 – 35절 ) 조회수 : 668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9-08-23

여인들이 빈 무덤을 목격했던 그 날, 두 제자가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속량하실 분이라고 기대했던 예수님이 너무나 허망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다 끝났다고 여긴 것이다.

Ⅰ. 두 제자와 동행하신 예수님(13-17절)

엠마오는 두 제자의 고향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으로 인한 소망과 기대가 무너지자 귀향을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빈 무덤과 천사들에 대한 여인들의 증언(22-23절), 그리고 빈 무덤을 확인한 다른 제자들의 증언(24절)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려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엠마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그들 곁에서 동행하셨는데도 그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전과는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16절). 불신앙이 그들의 눈을 가린 것이다. 그래서 바로 옆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걸으셨다는 것을 볼 때, 꽤 오랜 시간 그들과 동행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예수님이 먼저 말을 거셨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17절)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신 것이다. 예수님을 불신앙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신다.

Ⅱ. 성경을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18-27절)

두 제자는 어떻게 예루살렘에 있었으면서도 그곳에서 일어난 엄청난 일을 알지 못하느냐고 되물었다(18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은 온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과 부활의 증거에 관한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와중에 자신들이 예수님에 대해 기대했던 바를 언급했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들이 기대했던 바가 결코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성경에 계시되고 예언된 것임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렘23: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렘33: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겔15: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단2:34-35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호14: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욜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암9: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옵1:17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옵1:21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마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미7:18-20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나1: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합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학2: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슥14: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그들도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알았을 테지만, 성경이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예수님이 정작 어떤 분인지는 알지 못했다. 말씀을 많이 안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셔야 믿음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이 말씀을 깨우쳐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며 역사하신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다. 말씀만이 우리의 가려진 눈을 열어 준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듣고,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말씀은 우리의 지혜와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지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깨닫게 하사 부활 신앙에까지 이르게 하시는 그 은혜를 간구하고 사모하자.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Ⅲ. 부활의 증인이 된 두 제자(28-35절)

목적지인 엠마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그 마을에 들어가시지 않고 더 가려고 하셨다(28절). 예수님의 가르침에 푹 빠져 있던 두 제자는 예수님께 자신들과 유하시기를 강권했다(29절). 예수님을 붙잡고 떼를 쓴 것이다. 말씀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말씀의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는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은혜, 이런 기쁨을 맛본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을 더 가르쳐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계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예수님이 떡을 떼어 죽사하고 나누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31절). 무슨 의미인가? 우리의 눈은 우리의 지식이나 노력으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뜨게 해 주셔야 비로소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도 제자들이 누린 그 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은혜를 입어야 영적인 눈이 밝아진다. 그런데 그들의 눈이 밝아진 순간,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다(31절).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육체의 한계에 갇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과 동행하면서 말씀을 자세히 가르쳐 주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다. 드디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엠마오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33절).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다(35절). 여인들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른 제자들도 모두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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