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21218 잃어버린 아들( )의 비유 (누가복음 15:11-32) | 조회수 : 326 |
작성자 : 교회사무실 | 작성일 : 2022-12-20 |
20221218 잃어버린 아들( )의 비유 (누가복음 15:11-32)
1.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본문의 비유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 중 둘째가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유산을 미리 요구하였다. 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선언이며, 아버지에게 모욕적인 행동이었다. 둘째 아들은 유산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 모든 재산을 탕진한다. 그는 아버지 집에서의 삶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다짐한다. 아버지께 사죄드릴 말씀을 미리 준비하고 돌아갔지만, 틈만 나면 내다보시던 아버지께서 그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 나가서, 아들이 사죄하기도 전에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그의 모든 것을 회복하였다.
2. 맏아들의 분노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고, 집안의 가족들과 종들과 그 기쁨을 나누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쁨이 동참하지 않는 유일한 한 사람이 바로 그의 형, 맏아들이었다. 자신은 아버지를 묵묵히 섬겼고, 불순종한 적도 없고, 늘 시키는 대로 순종했다는 거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 유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은 이렇게 환대하다니, 자기는 도무지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둘째 아들만 집을 나간 게 아니라, 맏아들도 집을 나가 있었던 거다. 첫째는 몸은 아버지와 한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아버지를 떠나 있었던 거다. 우리는 둘째만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흔히 이 비유를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혹은 “탕자의 비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이 비유는 “잃어버린 아들들의 비유“였던 것이다.
3. 아버지의 반응
하지만 아버지는 맏아들의 무례함 앞에서도 분노하지 않고 아낌없이 그를 품어주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비유 속의 아버지는 바로 ‘아낌없이 베푸는 아버지 하나님’, 즉 ‘탕부 하나님’(Prodigal God)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둘째가 아버지 재산의 3분의 1을 가져갔으니, 이제 남은 3분의 2는 결국 첫째의 것이다. 아버지도 당연히 그리 생각하고 있고, 언젠가는 그의 소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첫째도 결국 둘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다.
4. 비유 속 맏아들은 누구인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눅 15:2-3). 사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살던 사람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비유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도 도덕적인 삶을 살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나름 훌륭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맏아들로 비유하고 계신 거다. 그들은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5. 잃어버린 아들들의 비유
그래서 이 비유는 “잃어버린 아들들”의 비유라고 해야 더 옳다. 둘째는 돈을 챙겨서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에 잃어버렸다. 첫째는 아버지 곁에 있었지만, 그도 똑같이 아버지보다 아버지의 돈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도 잃어버린 아들이었던 거다. 물리적인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영적인 거리가 중요했다. 둘째는 물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다 멀어졌지만, 첫째는 물리적으로는 가까워도 영적으로 멀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둘째는 아버지 집을 떠나버렸기에 탕자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첫째는 탕자라는 것을 알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째는 티가 안 났을 뿐이었지, 모든 사람을 속였을 뿐이지,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6. “혹시 나는 맏아들이 아닌가?”
“당신이 선행을 통해 하나님을 조종함으로써 스스로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당신은 맏아들이다.(팀 켈러)” 사랑해서 섬기는 것은 아들이 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두려워서 섬기는 것은 종의 행동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종처럼 뼈빠지게 일했는데 하나님이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습니까?” 그렇게 분노하고 항의하는 맏아들이 될 수 있다. 둘째 아들은 대놓고 자기의 욕망을 추구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대놓고 돌아와서 아버지 앞에 펑펑 울며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면에 맏아들은 교묘하게 자기의 욕망을 아버지에 대한 순종으로 포장했기에, 자기 속에 있는 더러운 죄악을 솔직히 아버지 앞에 보이고 회개하지 못했던 것이다. 잃어버린 둘째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는, 잃어버린 맏아들도 되찾을 수 있을까? 예수님의 이야기는 미완의 스토리로 남아 있다.
7. 결론: 정말로 하나님을 위해 사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나님을 위해 헌금한다고, 하나님을 위해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린다고, 하나님을 위해 직장에 다닌다고 말할 때, 정말로, 정말로,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길 바란다! “다른 것이 내게 주어지지 않아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나를 돌보시는 아버지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진실한 고백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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