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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50601 (열왕기상 9:10-28) 하나님을 닮은 대리 통치자(God-like vice-regent) 조회수 : 24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5-06-02

20250601 (열왕기상 9:10-28) 하나님을 닮은 대리 통치자(God-like vice-regent)

오늘 본문에 솔로몬은 어려운 재판을 맡게 되었다.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다. 오직 고통과 비난만 있다. 생사가 위태로운 아이가 있다. 그리고 솔로몬의 탁월한 재판이 있다. 이것은 솔로몬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한 어머니의 진실한 사랑, 한 왕의 두려운 칼, 그리고 우리를 더 참되고 위대한 왕 예수님께로 이끄는 정의에 대한 이야기다.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판결과 한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모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깨닫게 되고, 동시에 저와 여러분도 그 진정한 왕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고 확신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진정한 왕은 깨지고 상한 자를 치유한다(1622).

이 사건은 부자나 귀족, 유명인이 관련된 재판이 아니었다. 국익이나 여론의 관심이 걸린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성경은 이 재판을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로 판결한 첫 사례로 기록한다. 왜일까?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정의가 실현되기 가장 어려운 곳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 사건은 지방법원에서 고등법원, 결국 대법원까지 올라간 셈이다. 이제 하나님의 지혜를 부여받은 솔로몬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위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솔로몬이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겨지는 여인들의 말을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집중해 듣고 있다는 점이다. 솔로몬은 이 여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긍휼과 배려, 지혜가 깊은 왕인지를 보여준다. 어떤 왕이 성매매 여성의 증언을 이토록 진지하게 들어주겠는가? 하나님의 지혜를 부여받은 솔로몬은 소외된 여인의 울부짖음을 듣는 마음을 가졌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판결 가운데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 지혜란 곧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듣는 마음이었으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이다. 솔로몬의 모습은 우리 하나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멸시받고 상처 입은 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돌보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솔로몬의 행동 속에 드러난다. 하나님은 약하고 천한 자의 신음에 귀 기울이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대리하는 왕 솔로몬도, 오늘날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그분의 성품을 따라야 한다. 우리 예수님도 왕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진정한 왕이셨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문둥병자를 친히 만지심으로 치유하셨다. 사람들이 경멸하여 죽이려 한 간음한 여인을 변호하여 살려주셨다. 도덕적 문제로 손가락질 받던 수가성 우물가 여인을 만나 경청해주시고, 그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셨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42:3) 참으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너무나 잘 보여주신 진정한 왕이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솔로몬처럼, 여러분도 주변의 깨지고 상한 이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눈물에 함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지니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닮아, 그분이 주신 지혜로 세상에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둘째, 진정한 왕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를 내려놓음으로써 사랑을 나타낸다(2327).

솔로몬 왕은 두 여인의 상반된 주장을 듣는다. 그리고 큰 칼을 가져와 아이를 둘로 쪼개라는 지시를 내린다. 왕은 농담을 한 것이 아니다. 원문은 건조한 법정적 어조로 기록되어 있다. 왕의 명령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아이가 마치 쟁탈중인 빵덩어리인 것처럼 칼로 아이를 잘라 나누라는 판결을 내린다. 솔로몬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여인들의 진술이나 아이의 상태로는 진짜 어머니를 가릴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결국 인간의 마음을 시험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의 생모는 아이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고, 이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것이었다. 반면에 가짜 엄마의 반응은 서늘하다. 긍휼이 없다. 아이를 위한 호소도 없다. 경쟁심만 남아 있다. 그녀는 아이를 원한다기보다는, 상대 여인이 고통받기만을 원하고 있다. 그녀의 사랑은 가짜다.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이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경쟁에서 이기려는 욕심뿐이다. 진짜 생모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모형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권리를 내려놓았고, 이는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에까지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한다. 진짜 생모의 희생은 단지 모성애가 아니라, 십자가 사랑을 닮은 자기를 비움의 사랑이었다. 솔로몬의 칼은 정의를 시험하기 위해 들려졌지만, 생명을 살리려는 사랑 앞에 멈추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칼은 죄 없으신 아들에게 내려졌고, 그 피는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늘의 권리를 내려놓고 찢기셨다. 진정한 왕은 생명을 내어주는 십자가로 사랑을 증명하셨다. 승리의 깃발이 아니라, 두 팔 벌려 자신을 내어준 십자가에 참된 사랑이 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대리통치자로서, 우리의 자리에서 권리를 내려놓고 생명을 살리는 십자가 사랑을 드러내길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진정한 왕은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한다(28).

이 이야기의 절정은 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기는 장면이 아니라, 온 나라가 솔로몬을 경외하게 된 장면이다.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왕상 3:28). 두려움은 단순한 무서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거룩한 떨림이었다. ‘하나님의 지혜라는 표현은 구약 전체에서 이 구절에 단 한 번 등장한다. 이는 솔로몬의 지혜가 단지 인간적인 통찰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신 영적 은사였음을 뜻한다. 백성들은 단순한 총명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담긴 판단을 본 것이다. 백성을 재판한 솔로몬의 보좌는 더 위대한 보좌, 곧 정의와 사랑이 완전히 만나는 보좌를 예표한다. 솔로몬은 참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칼을 내들었지만, 예수님은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칼을 받으셨다. 솔로몬의 지혜는 한 아기의 생명을 살렸지만, 그리스도의 지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모든 죄인을 살리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최종 판결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로서, 셀 수 없이 많은 죄인에게 무죄를 선포하시고, 깨어진 자들을 치유하며, 잃어버린 자들을 회복시키셨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참된 분별은 사라진 시대이다. 자녀 양육, 진로, 인간관계, 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는 전략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해야 한다. 이 지혜는 계산이 아닌 기도로 얻어진다. 이 지혜는 자기주장이 아닌 자기포기로 나타난다. 십자가는 바로 그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난 자리이다. 세상은 권리를 주장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내어주셨다. 솔로몬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칼을 들었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칼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판단의 순간마다 머리로만 계산하지 말고 무릎으로 기도하십시오! 데이터가 아닌 기도, 전략이 아닌 성령의 지혜로 선택하십시오! 오늘도 십자가 보좌 앞에 나아가 참된 왕의 지혜를 공급받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대리 통치자로 삽시다!

오늘 우리는 솔로몬의 법정에서 시작해 갈보리 언덕까지 걸어왔다. 흔들리는 인간의 정의 앞에, 모성애가 사랑을 증명했고,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 솔로몬의 칼은 멈추었지만, 하나님의 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칼은 무죄한 예수를 찔렀고, 그 피는 죄인을 살리는 생명의 강이 되었다. 오늘도 그 강은 우리 곁에서 흐르며, 상한 영혼을 소생시킨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향한다. “당신은 어떤 왕을 닮아 살고 있는가?” 예수님처럼 내 권리를 내려놓고 다른 이를 살리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정의의 칼을 들기 전에, 사랑의 눈물로 상대의 아픔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가정과 교회, 일터에서 하나님을 닮은 대리 통치자로 살아간다. 판단의 순간마다,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칼을 멈출 줄 아는 지혜와, 자신을 나누는 사랑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말이 정의의 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 되길 바란다. 여러분의 손이 권리를 움켜쥐기보다 눈물을 닦아주는 손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렇게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었고, 그의 판단에는 하늘의 지혜가 있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생명을 살렸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더욱 빛나는 대리 통치자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란다! 가정과 일터와 이웃을 십자가 사랑으로 섬겨서 주님의 사랑과 정의가 흐르게 만드는 복된 대리 통치자의 삶을 사시는 울산시민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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