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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제8화- 유엔이 들려주는 북한이야기- 북한에서의 기독교. 조회수 : 793
  작성자 : 동문수 작성일 : 2015-02-12

종교탄압

북한에서는 기독교의 파급이 김일성 개인 숭배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고, 사회적 정치적인 조직의 기반을 형성하여 국가의 외부세력과 교류하는 등 특별한 위협이 된다고 간주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몇 개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기독교는 종교행위가 금지되고 박해당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것은 금지되고 있고 위반하면 중대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는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나 종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위원회에 증언한 Mr. A는 북한에서는 오로지 이념이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 이념이 있고 한가지 종교가 있는데 그것은 김일성 이데올로기다.

위원회에서 알게 된 바는 공식적으로 이데올로기 이외에 다른 신앙은 전혀 용납되거나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Mrs. X라는 증인이 워싱턴에서 말하기를

전 북한 사회는 신앙 종교그룹이 김일성과 그의 주체사상으로 이야기 하는 성경(기독교의 성경과 다름)으로 구성되어있다고 강조해도 좋다.

만일 기독교나 천주교나 어떤 종교이던지 간에, 그러한 종교들이 그들의 주 종교인 김일성 사상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위험과 그로 인해서 그들의 지도력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지도력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생긴다거나 사회를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발생시킬 수 있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이 진짜 신이 아니고 다른 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종교이던지 북한 사회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17세기에 첫 번째 한 반도에 발을 디딘 이후로부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북한지역에서 이 견인이 시작되었고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표현될 정도였다. 세계 기독교 연대는 1950년에는 북한 인구의 약 28%가 기독교 인 이었다고 한다. 1950년에 노동당 연보에서도 약 24%라고도 되어있다.

반면, 인권위원회에서 확인한 바로는 북한에서 2002년에는 약 0.16%라고 했다. 이것을 다시 말하자면 1950년에 200만 명에서 2006년에 북한에 38,000명으로 기독교인들이 현저히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탄압의 역사

위원회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북한에서의 종교탄압은 한국전쟁 이전에 시작된 것 이었다.

전체 종교박해의 기간을 네 단계로 구분해서 살펴보면

1946~1950년 한국전쟁 전

1950~1953년 한국전쟁기간

1953년~1971년 김일성 주의가 정착되기 이전의 단계

1972년~현재 주체사상의 시대

한국전쟁과 김일성 주의가 시작되기 이전 기간이 가장 많이 기독교를 포함한 신앙인들을 탄압하는 시절이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처형했거나 도피했거나 감옥에 들어갔다.

기독교는 미국과 연관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훨씬 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세 번째 단계에 들어갈 때와 네 번째 단계의 준비 기간 그리고 현재의 단계에서 천도교, 기독교와 불교는 성분 시스템에서 적대계급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러다가 독자적으로 예수를 믿는 그룹들이 1990년대에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는 중국으로 탈북을 했다거나 식량문제가 심각했을 때에 중국접경의 기독교인들과 접촉이 되었다거나 또는 식품의 도움을 받았다거나 구조를 받았다거나 하면서 신봉하기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 증인이 이야기하기를 지하교회가 있어서 집에서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또 다른 종교들이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2000년 대 초부터 종교행위가 급격히 늘어나서 보다 확실한 내용은 알 수가 없지만, 한 추측 보도에 의하면 약 20만에서 4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아주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비밀리에 북한에서 종교행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북한의 정책은 이중성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청중을 유도하기 위해서 종교에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심한 탄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9년에 김일성 대학에 신학 관련된 학과가 설치가 되어서 개신교, 캐토릭 ,불교, 천도교와 이스람교등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곳에서 배운 학생들은 아주 충성심 높은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은 졸업한 이후에 국가가 승인한 종교시설에서 근무하도록 되어있다.

나아가서 위원회가 증인으로부터 알게 된 것은 이러한 종교시설들은 외화벌이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회와 관련한 기관들로부터 외국사람들을 접촉하고 외국으로부터 기금들을 받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한 보고자에 의하면 이 사람은 예전에 대학에서 공부했던 사람인데 종교기관에서 일하고 외국 무역부분에서 일 하기도 하고 국경지역에서 경비를 하면서 종교적인 행위들을 비밀리에 조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동일한 보고로써 국가에서 승인한 교회는 외국 방문객들을 위한 전시용이라는 것이다. 또 이 증인은 이야기하기를 교회는 국가가 승인하여 설립한 것이고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예배를 들일 수 있는 진정한 교회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것은 정치범죄로 여겨진다.

위원회가 발견한 것은 여러 교회들이 북한 내에 설립이 되었지만 일반 주민들은 기독교 신앙에 전혀 개방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 기독교는 마약 아편 최면제 같은 것들을 사용하는 범죄와 같이 취급을 받고 자본주의와 서방의 공격과 동일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기독교 선교사는 미국 자본주의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고 흡혈귀와 동일한 짓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김일성이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을 인용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는 말하기를 ‘종교는 신화와 같은 것이고 예수를 믿거나 석가모니를 믿는 것은 신화를 믿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죽어야 그 습관을 고칠 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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