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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유로비전트립 모임 보고드립니다. | 조회수 : 662 |
작성자 : 성낙원 | 작성일 : 2015-06-22 |
지난 토요일 모임도 각 팀별로 (총 3팀) 한주간 할당받은 책의 내용에 관하여
각 팀의 발표자가 요약정리하여 다같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조에서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역사에 관하여 나눠주었습니다.
네덜란드의 개혁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인 과정을 설명해주었는데,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가혹한 박해를 받으면서 흩어진 교회들로 존재하면서
제대로 된 교회조직을 갖추고자 베젤이라는 곳에서 합법적인 총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고,
마침내 1571년 10월 4일 앰덴에서 최초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총회라고 할수있는 모임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 총회에서 교회 조직에 대한 원칙들을 제정했는데
특히 교회조직에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지향하는 바는 직분간의 평등성이라고 합니다. 기존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계서적 직분관을 거부하고
교회가 로마교회처럼 한 사람이 아니라 회로 다스려져야 함을 분명히하고
이때부터 엠덴에서 작성된 교회법이 현재까지도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교회법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어서 후속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개인 경건생활의 대한 강조가 있었고, 기존 종교 개혁자들이 설교, 주석, 신학 논문등에 관심을 두었다면
후속 종교개혁가들은 개인기도, 묵상, 자기반성등에 중점을 두었고 그 결과 수준높은 개인 경건 생활이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경건주의자들의 주된 관심은 도덕적으로 나태하고 방종에 이르는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었고, 전통적으로는 설교나 성례를 통해서 그 일을 하려고 했다면,
나중에는 경건한 삶을 실제로 실천하기 위해 소그룹 모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따로 소그룹으로 모여서 경건 서적을 읽고 토론하면서 서로 권면하고
경건한 삶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소위 '교회 안에 작은 교회'를 지향하며 자신들의 모임을 교회안에 두었고, 자신들의 모임을 기반으로 하여 교회 전체를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이 때의 경건주의가 오늘날의 한국교회에도 영향을 주어 가정교회의 뿌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납니다.
2조에서는 베를린의 명소들과 여행지, 그리고 그 명소들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나누어 주었습니다.
독일의 정식명칭과 정치는 연방 공화제형태로, 정부는 내각 책임제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국가원수는 대통령이지만 실질적으로 정치는 총리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사실,
베를린 인구가 350만명이며 총인구는 8천여만명 총면적은 한반도의 1.6배이며 기후는 온화하고 다습하다는 기본적인 독일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베를린에는 곰이 많이 살았었고, 그래서 베를린이라는 이름의 뜻이 '작은 곰'을 의미한다는 설명이 기억에 남습니다.
3조에서는 '이것이 교회사다' 라는 책에서 '프랑스 종교개혁'편에 관하여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프랑스가 가톨릭이 69%로 압도적이지만, 한때는 종교개혁으로인해 많은 이들이 핍박받고 희생되었습니다.
그당시 로마 가톨릭의 교권제도에서 일삼는 미신제도 타파와 미사 철폐등 온갖 우상들을 철거하자는 내용의 벽보가 파리의 벽에 붙었고,
이를 프로테스탄트와 칼뱅파인 위그노들이 열정적으로 주장했으나, 오히려 프랑스 국왕은 이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겨
이단척결을 명분으로 프랑스 종교재판등에서 공개 참회나 화형에 처하는등 다양하게 핍박했습니다.
개혁의 중심세력은 위그로라고 불리는 세력인데, 프로테스탄트중에서도 칼뱅의 가르침을 따랐던 프로테스탄트들을 위그노라고 합니다.
1555년경에 최초의 위그노교회가 파리에 세워졌지만, 16-17세기 로마가톨릭으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고, 1598년에는 낭트칙령을 통해 조건부 신앙의 자유를 허락받았다가
다시 1655년 이 칙령이 폐지되면서 핍박을 받고, 다시 100년 후인 1787년 관용령이 발표되면서 비로소 위그노들도 프랑스에서 종교권과 시민권을 가지면서 이들의 자유가 인정되었습니다.
또한, 장 칼뱅이 대표적인 프랑스 종교개혁자로 프랑스인으로 태어나서 스위스에서 평생 목회를 하면서 그 업적과 삶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주요 서적인 '관용에 대하여' , '영혼의 불멸성', '기독교 강요' 등의 관한 간단한 내용을 나누어주었고, 제네바에서 목회를 하는 과정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네바 목회에서 칼뱅은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정확하게 해석해서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살아가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리를 모르면 성경의 내용을 서로 연결 짓지 못하고 일관성 있는 해석을 할 수 없기에, 칼뱅은 직접 교리를 만들어 가르치고, '신앙고백서'를 만들어 이 책자를 통해
교리를 배우도록 했습니다. 칼뱅의 교리문답은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율법, 기도, 하나님 말씀, 성찬을 주제로 다루면서
순수한 경건성 회복, 도덕적 삶의 회복, 교회질서를 바로잡아 경건성을 촉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칼뱅주의는 스위스에서 출발해 프랑스에 유입되면서 위그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이로인해 30년동안의 구교와 신교의 종교전쟁을 마치고
종교의 자유를 얻고 비록 지금은 카톨릭국가가 된 프랑스이지만, 칼뱅의 개혁주의의 씨앗이 싹 텄던 곳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번주도 네덜란드와 독일과 프랑스의 종교개혁과 그 역사등에 대해서 공부했지만, 세계사의 주를 이루던 유럽의 역사가 종교의 역사와 함께 하였고
정치와 종교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각 나라별로 구교 vs 신교의 대립세력으로 몇십년씩 전쟁을 치루고 핍박을 못이긴 프로테스탄트들이 나라밖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각국은 물론 미국 맨해튼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공부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또 이 자유가운데에서도, 얼마나 무관심과 방종으로 나태하게 보냈는지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개신교의 교리와 부흥으로 인해 자리잡기까지
오랜역사동안 수많은 피와 땀의 희생이 있었는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고국의 삶의 터전도 떠나서 머나먼 타지에서 신앙을 지켰던 성도님들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공부하고 상상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첨부된 사진은 함께 공부하는 모습과, 그룹을지어 짝기도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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