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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휴스턴 평신도 세미나를 다녀와서 | 조회수 : 847 |
작성자 : 이선희 | 작성일 : 2016-10-28 |
목장을 시작한 지 5년만인 올 6월 평신도 세미나에 다녀오고 연이어 8월에 목자 컨퍼런스를 다녀왔습니다. 밀린 숙제를 마친 듯 편안한 마음으로 총목자 모임에 참석했는데, 목사님께서는 휴스턴 평신도 세미나에도 다녀올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남편이 올 초부터 실직상태인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지만, 시간적으로는 다시 없을 기회인 것 같아서 주저없이 신청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처한 상황으로 마음이 많이 안 좋은 상태였고 출국하기 전 마지막 목장에서는 휴스턴에 가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다고 힘든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이 많이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마음이 불편하였지만, 귀한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가는 세미나에서 아무런 유익이 없이 돌아온다면 정말 후회가 될 거 같아서 ‘제가 꼭 봐야 할 것들을 잘 보고 배워서 목장 사역과 내 신앙 생활에 잘 적용하여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하였습니다.
10여 시간여의 비행과 3시간30분의 대기 그리고 4시간의 비행 끝에 10월 6일 저녁 7시에 휴스턴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우리를 마중 나오신 목자님과 함께 교회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고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비타민을 사서 목자님 댁으로 향했습니다.. 목녀님은 세 아이들을 재워놓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출국 전에 이종관 목사님께 졸지 말고 강의를 잘 들으라는 당부를 두 번이나 받은터라 일찍 자야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목자님 부부는 우리에게 가서 쉬라는 말은 하지 않고 다과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곳에서 밤마다 은혜와 회복과 감사가 넘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목자님의 초원지기이신 이재동 전도사님께서 홈스테이를 많이 해 보셨는데, 오셔서 일찍 방에 들어가 교제를 많이 나누지 못한 분들은 가시고 난 뒤에도 별로 생각이 안 난다고 꼭 붙들고 이야기를 많이 하시라고 귀뜸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첫째 날 밤 늦게까지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시차 때문인지 말똥말똥해진 정신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목자님은 1년 4개월 동안 실직 상태였는데, 우리가 가기 일주일 전에 취업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본인이 수없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해도 취업이 안 되었었는데, 우물선교를 함께 다녀 오신 분의 소개로 취직을 하게 되었고, 출근을 해서 보니 꼭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 아니었음에도 취업을 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하시며, 지금의 자리에 충실히 일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다고 하셨습니다.
절대로 자기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가기 전부터 결심했던 남편은 목자님의 진솔한 고백에 자신도 같은 처지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고, 함께 울고 웃으며 위로 받고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도 목자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올 초부터 목자로 헌신하신 결단에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느 목자님이 ‘저는 first job이 목자이고 먹고사는 일은 그 다음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본인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신다고 하시면서, 휴스턴 서울교회에서는 사역을 구걸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늘 복 받는 일을 거절하면 그 기회가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니, 사역을 제안 받으면 대부분 수락하신다고 하시면서 본인도 목자를 하게 되었다고 하시는 말씀에 나의 모습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보다 목장사역을 오래하신 분들을 만나서 잘하는 방법을 듣고 배우길 바랐었는데, 내 생각을 뛰어넘어 이렇게 정확히 우리의 상황에 딱 맞는 가정을 연결해 주셨는지....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전율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들 둘과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다보니, 미국에 가서는 애들이 없거나 큰 애들이 있는 집이었으면 했었는데, 목자님 댁에는 어린 아이가 셋이나 있었고, 목장 모임에는 아이들 숫자가 어른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것도 제일 큰애가 9살. 올리브 블레싱 할 때는 한 사람씩 나와서 이야기를 하고 어린 아기들은 부모 중 한 명이 안고 기도제목을 이야기하고 함께 기도하고 아이들 중에 한 명이 마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찬양을 할 때는 TV에 영상을 띄워놓고 춤을 추며 찬양하고 부모들은 손뼉을 치며 함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정신없이 아이들이 떠드는데도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미국에 와서 마음이 너그러워졌나? 제 자신의 감정이 신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두 아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우리 가족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습니다. 함께하지 못하고 제 각각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며 부모로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이니까 가능한 거야 .....
거긴 미국이니까 그렇지.....
목사님께서 휴스턴 서울 교회 이야기를 하시면 나의 반응은 늘 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궁금했습니다. 대체 뭐가 다를까???
이틀 동안 이어진 간증들을 들으면서 또 홈스테이로 섬겨주신 목자, 목녀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분들이 목사님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가정교회를 세워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끌고 가시면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휴스턴에서 이 종관 목사님 생각이 가장 많이 났습니다. 목사님의 호통 속에 담긴 안타까움과 절박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지 못했음을 회개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남편에게도 동일한 마음을 주셔서 우리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이 우리와 현실적으로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핑계가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한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에 나의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첫 날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신 목녀님은 아침 7시가 출근 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날 바쁜 와중에도 손수 갈비탕을 끓여 놓으시고 출근하셨고, 목자님이 갈비탕을 끓이지 않고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주신 것을 알고는 짬을 내서 다시 달려오셔서는 미안하다고 하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주일 아침에는 만두를 직접 빚어서 떡국을 끓여 주셨습니다. 만두피가 엄청 두껍고 딱딱한 만두였지만, 저도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만두를 별거 아닌 듯이 뚝딱뚝딱 만드는 모습에 완전 감동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드라이기가 타는 냄새가 나서 말씀드렸더니 목자님께서 새 것을 사 오셔서 저녁에 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목자님은 출근하신지 며칠 되지도 않으셨는데도 우리의 발이 되어주시느라 시간을 쪼개어 섬겨 주시면서도, 저희가 불편해 할까봐 회사가 바쁘지 않아서 괜찮다고 항상 편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리고 목녀가 된 지 이제 일 년도 안 되었지만, 목녀님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섬김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는 항상 몸이 힘들다, 일이 바쁘다, 아이들을 챙겨야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등등 여러 가지 핑계로 내가 애쓰지 않고도 쉽게 할 수 있는 일들만을 찾아서 했던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하는 섬김, 기대한 것보다 넘치는 섬김이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하려고 애를 쓰려고 합니다. 시민교회의 많은 목녀님들에게 당연한 섬김이 저에게는 항상 뭔가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목녀로써 한 게 없는 것 같았는데, 휴스턴을 통해 깨달은 것을 실천하며 섬기는 기쁨을 맛보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휴스턴 세미나가 어땠냐고 물어보십니다.
떠나오면서 내가 받은 은혜와 감동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로 전달해 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내년에 꼭 다녀오세요.’
저도 내년에 또 가고 싶습니다.
휴스턴을 다녀와서 제가 결단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은
1.우리교회와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자.
2.내가 할 수 있는 것 보다 조금 더 섬겨보자.
3.기도하는 목녀가 되자.
4.가족과 밖으로 나가 시간을 함께 보내자.
입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멀리 가서 마음으로 느끼고 왔습니다.
이재동 전도사님께서 초대해 주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가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남편에게 보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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