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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장창민 형제의 은퇴식 | 조회수 : 677 |
작성자 : 구신회 | 작성일 : 2019-12-14 |
지난7일 토요일 오전10시 쯤 일터에 있는 저에게
병원에서 '장창민형제를 봐야될 사람은 지금 병원에 오라'는 연락이라며 목장카톡방이 소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급한 일을 정리하고 울산병원을 몇Km 남긴 10시 반쯤 안타까움의 카톡이 또 울립니다
'방금 소천하였다'는 전갈이었습니다.
뒤미쳐 도착해 임종을 마치고 나오는 유족들과
교대하여 둘러 쳐진 커튼을 제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 누워있는 병상을 찾아 얇은 온기마져 사라져 가는 형제님의 마지막 손을잡았습니다.
2002년 산업현장에서 낙하사고로 온전히 병상에 의지하여 가부 정도의 간단한 의사 소통만 할 수 있는 삶을 이어가야 되는 심신 미약의 상태로 17년을 버텨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목자로 시작할 무렵에 벌써 5년쯤 병상 생활에 지친 형제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엄마와 함께 있는 6살짜리 맹랑한 꼬맹이와
열댓살 장애를 가진 성준이를 같이 만났습니다.
처음 시작한 햇병아리 목자가 어찌 바른 섬김의 자세나 있었겠습니까
그져 한번씩 찾을 때 마다 하나님아버지의 긍휼 하심만을 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만들어낸 기도이었는지
처음에는 절박함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2년쯤 지나 목장에, 아니 우리가정에 매서운 바람이 불어 혹독한 시련을 넘어냅니다
시련을 거치며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또 가장 가까운 동역자도 세워 주시는 은혜를 입어
기쁨으로 사역하는 목자가 됩니다.
하지만 목장사역에 열매는 보이지 않습니다.
몇번씩 분가하는 목자님들이 부러워 주님께 떼를
써 보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렇게 부러워만 합니다.
간혹 병원을 찾을 때면
기도손도 따라 하고 아멘도 잘 했었는데
"하나님이 형제님 사랑해요" 하면 환하게 웃어주고
한번씩 고집을 투정하다가도 이내 웃음으로 그치는
순박한 마음을 열어 주었지요.
병상이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형제님의 상황을
주님은혜로 받아 들이기 까지는 거의 10년의 시간이
더 필요 했습니다
큰아들은 지적.지체복합장애이고
둘째는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딸아이로 자랐고
막내는 4~5년간 사춘기의 특별함으로 문제를 달고 사는 사고뭉치였습니다.
이런 어려운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 되어야 될 자매님의 안이한 경제관념 때문에 가정경제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던
병상의 형제님으로 인해 가정이 지켜 질 수 있었습니다
매달 산재요양급여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그렇게 아픔과 눈물의 병상을 최선을 다해 살아 내었습니다.
이렇게 하심이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 대한 기도의 응답이심을 겨우 깨닫게 하셨습니다.
힘든 고난도 끝이 있슴이 주님의 은혜로 읽힙니다
이제 병상을 은퇴한 장창민형제를 보내 드리면서
남겨진 유족들을 다시 보듬어 봅니다
한때는 예쁜짓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내게 부탁하신 주님의 귀한자녀들인데 한번더 가슴에 담아 주님을 찾습니다.
2019년 12월 9일
하늘 공원에서 장창민형제님의 은퇴 기념예배로
온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하나님앞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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