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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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0618 위로를 기다리는 자 (누가복음 2장 22절 - 39절) 조회수 : 618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7-06-16

예수님의 부모는 정결 예식과 아이의 대속 제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간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났다. 시므온과 안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아기 예수님의 사명과 정체성을 밝히 증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두 사람과 관련된 사건은 예수님의 탄생 기사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면서 이제까지 나왔던 이야기의 신빙성과 권위를 확증하는 역할을 한다. 두 증인의 증언이므로 법적인 권위를 지닐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증언이라는 면에서 완전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예수님과 이들이 만난 장소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예수님을 통한 만민의 구원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예언과 율법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Ⅰ. 예수님의 정결 예식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유대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세 가지 의식을 지켰다. 1>태어난 지 8일 째 되는 날 있는 아기 할례식, 2>40일째 되는 날 있는 산모의 정결 예식, 3>태어나서 한 달 될 때 첫 아기를 하나님에게서 되사온다는 의미의 대속 제사 즉 속전식이 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율법대로 제물과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에 명시된 규정을 지켰다. 예수님의 부모가 얼마나 경건한지를 알 수가 있다. 그들은 율법을 그대로 지킬 뿐 아니라 그 이상을 행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요셉과 마리아가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약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사용하여주시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계속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서는 쓰실만한 정결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어야한다. 주위에 보면 하나님이 더 크게 쓰시기를 원하시는데 정결하지 못해서 사용하지 못하시는 것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새로운 좋은 습관 하나만 더 갖추든지, 아니면 악습 하나만 정리하면 더 크게 쓰실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Ⅱ. 메시아를 만난 사람들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빛이 이 땅에 임하였으나 세상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구주가 오신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구주를 기다리던 사람, 경건한 기도의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을 때에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을 증언하는 두 명이 있었다.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은 천사들이 증언했고, 다음에 목자들이 증언했고, 이번에는 성령 충만한 시므온 이라는 노인과 성전의 예언자 안나가 증언을 했다.

가끔 자칭 구세주라는 사람들이 등장을 한다. 그런데 누가 구세주라고 하더냐고 하면 하나님이 직접 말씀했다고도 하고 천사가 말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구세주인 것을 증거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을 목자, 스가랴, 안나 같은 사람들을 통해 확실히 증거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는 더 큰 증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약 1000년 전부터 수십 명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앞으로 오실 구세주에 관하여 증거하셨다. 예수님은 갑자기 역사 속에 나타나셔서 자신이 구세주이니 믿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구세주이니 믿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을 보내 예고하셨고,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시작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이 예언을 하나하나 다 성취해 주셔서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증거해 보여주셨다.

Ⅲ. 기다리는 자는 만난다

신앙생활에서 기다림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기도의 응답도 약속의 성취도 하나님의 역사도 기다림으로 보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간절히 기다리며 살아간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와 주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 선지자 안나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온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음을 의미한다. 믿음이 있어야 아무리 오랜 세월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 믿음과 아울러 또 필요한 요소는 바로 인내다.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않더라도 믿는 바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내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다(갈5:22). 시므온과 안나는 성령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내하며 오랜 세월 기다릴 수 있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우리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와 성령께서 말씀하신 바를 기다리는 동안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았다. 성령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안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수십 년의 세월을 과부로 살아왔지만 성전에 머물러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삶을 살았다. 기도의 응답이나 하나님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실 것을 기다리는 사람은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오랜 기다림의 결과는 정말로 귀하다. 시므온과 안나는 메시아를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그 기대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처럼 그들에겐 평생을 기다린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만족과 기쁨이있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모든 것을 보상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주님과의 만남보다 중요한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므온은 성령께서 말씀하신 주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의 구원을 보는 영광을 누렸다. 하나님의 아들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안나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서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오랜 기다림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가! 우리는 지금 중요한 것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다.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확실하게 믿고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인내하면서 경건한 삶에서 떠나지 말고 기다리자. 그 기다림의 결과는 정말 놀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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