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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0806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 (누가복음 4장 31절 - 44절) 조회수 : 1023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7-08-04

예수님이 고향인 나사렛에서 쫓기듯이 떠나셨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중심 도시인 가버나움을 복음 사역의 전략적 요충지로 선택하셨다.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놀란 이유는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Ⅰ.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다

31-32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마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말씀이 권위가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당시 성경을 잘 안다는 율법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자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대변인으로서 말씀하셨다. 형식을 떠나서 예수님의 말씀에는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권위가 있었다. 말씀의 권위는 말하는 사람의 권위에서 나온다. 우리가 삶에서 예수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하여서는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해야한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렇다 하시면 그런 줄 알고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에 그 권위가 우리 삶에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Ⅱ. 하나님의 말씀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33-36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에 어떤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이 존재를 나타냈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아직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몰랐는데, 귀신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다. 귀신에게는 예수님을 알아보는 신통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능력으로 사람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말씀의 능력과 영적 권위에 놀랐다. 예수님의 권위는 귀신을 쫓는 방법에서 나타났다. 다른 종교나 무속 종교에서는 주문을 외우든지, 굿과 같은 의식을 해서든지, 물건이나 심한 경우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쳐서 귀신이 떠나가게 한다. 예수님은 단순한 말씀의 권위에 의하여 물리치셨다. 잡신을 섬기는 선교지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로 귀신들이 쫓겨 가고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면서다. 귀신을 쫓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 사역중의 하나다.

막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귀신을 쫓기 위하여서는 회개와 용서가 선행해야한다. 바퀴 벌레는 아무리 죽여도 또 나타난다. 바퀴벌레를 멸절하기 위하여서는 먹이가 되는 음식을 깨끗이 치워야한다. 죄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귀신들이 우리에게 들어오고 남아 있을 근거를 마련해 주는 셈이 된다. 귀신을 쫓을뿐더러 다시 근접하기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와 용서가 필요하다.

또 예수님의 권위는 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를 괴롭게 하는 열병을 꾸짖으셨다(38). 그러자 열병이 떠나가고 시몬의 장모가 일어나 예수님을 대접했다(39). 여기서도 예수님의 권위가 그대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말씀의 권위로 고치셨다.

누가가 귀신 쫓는 것과 병을 치유하는 것을 구별하여 기록한 것을 보면 둘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병은 귀신과 연결을 시키는 것보다는 죄와 연결을 시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모든 질병이 다 죄로 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중풍 병자를 고치실 때에 “네 죄가 사했다”라고 선포하셨다.

막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약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마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예수님의 권위에 의존하여 치유를 위해 기도하자. 치유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치유가 되리라는 확신이 안 생길 때가 많다. 그럴 때 이렇게 기도하자. “하나님,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자체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치유가 일어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 믿음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Ⅲ. 하나님께 말씀과 힘을 공급받아야 한다

42-43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예수님은 새벽이면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시며,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위해 다른 마을로 떠나셨다. 우리에게는 능력을 덧입고 사명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에게는 귀신을 쫓고 질병을 고치는 것이 사역의 목표가 아니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귀신을 쫓고 질병을 고치는 것은 복음의 권위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실 때에도 죄를 사할 권세가 있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병을 고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는 것, 귀신을 쫓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한다. 병을 고치는 것 자체가 사역이 되고, 귀신을 쫓는 것 자체가 사역이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이 사역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으므로 가버나움 사람들의 강한 요청을 뿌리치고 순회 전도 사역의 길을 택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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