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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0903 그리스도께 뿌리내린 고백적 신앙-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조회수 : 647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7-09-01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1절 “그 후에” 이때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안식 후 첫날 무덤에 찾아 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날 저녁 제자들에게 그리고 8일 후 도마에게 나타나신 그 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현현하신 이유는 부활의 진실성과,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증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믿음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인생이 변화 된 것입니다. (예, 도마, 바울, 베드로) 최근 신앙생활의 건조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예수 부활에 집중해보십시오. 예수 부활이 내 부활이라는 확신이 들게 되면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이 아닌 생활신앙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생업으로 돌아간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그리스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이 생업으로 돌아간 7명의 제자들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다른 제자 2명)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절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삶에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일해도 허탕일 수 있는 인생이 우리 인생입니다. 
6절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하지만 주님이 오셔서 말씀해주시고 그 말씀에 순종할때 빈 배 같은 인생이 만선 같은 인생이 됩니다.

그때 그 사건
베드로에게 오늘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이미지는 그 때 그 사건들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6절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시고 그렇게 했더니 많은 고기를 잡았던 이 모습은 예수님이 자신을 처음 부르러 오신 그날의 그때 그 사건과 같았습니다. 9절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다”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숯불 건너편에 계신 예수님의 이미지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날 밤 그때 그 사건을 기억하게 합니다. 15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3번 물으시는 질문에 그날 밤 주님을 모른다 3번 부인하던 그때 그 사건이 기억납니다. 

아가페와 필레오에 대한 오해
사랑은 4가지가 있습니다. 에로스는 육체적 사랑, 필레오는 친구사이의 사랑. 아가페는 절대적 사랑, 스테르고는 부모와 자녀사이, 혹은 가족간이 헌신적 사랑을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특별히 의미를 가지고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가페냐 필레오냐 라는 의문보다는 주님의 질문과 베드로의 대답 사이에 오관 대화의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첫째, 베드로를 회복시켜주시는 예수그리스도
오늘 예수님의 3번의 질문과 베드로의 3번의 대답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날 밤 베드로가 들었던 3번의 질문과 베드로의 3번의 대답과 오버랩 되는 사건입니다. 그날 밤 대제사장의 집 앞에는 숯불이 피워져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숯불 건너편으로 보이는 고난당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모른다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자신이 부인했던 주님이 부활하셔서 숯불을 피워 음식을 차려놓으신 후 숯불 건너편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시며 베드로의 회복을 도우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죄를 들춰내어 댓가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덮으시며 더한 충성으로 이끄셔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죄를 죄로 다스리면 분노와 상처만 남습니다. 죄는 사랑으로 다스릴 때 회개와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둘째, 사랑이 전부임을 알려주시는 예수그리스도
베드로의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에 주님은 “네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치라”며 베드로를 사명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사명자로 부르시는 조건에 사랑이면 족합니다. 사랑이 전부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언행과 헌신이 아름다운 소리와 같아야 하는데 사랑이 없으면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왜 사랑이 제일입니까? 사랑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율법과 복음의 차이는 예수의 사랑입니다. 복음에 예수의 사랑이 빠지면 율법이 되고, 율법에 그 사랑이 채워지면 복음이 됩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치유하시고, 왜 우리를 고난으로 인도하십니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수준은 안 되고 있는 것이 우리 수준입니다. 잘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안 되는 것이 우리의 참모습입니다. 

 “이 사람들보다” 의 3가지 의미
첫째 현재 주변에 같이 있는 다른 제자들, 둘째 과거 베드로의 고백에 대한 회상, 셋째 “이것들”의 의미. 현재 베드로 주변에 있는 동료들, 배, 생선들, 생업 등 재산.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시제가 의미하는 것
이 질문은 모두 현재형입니다. 즉, 과거에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앞으로 나를 얼마나 사랑할 것인지가 아니라.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지금 네가 나를 이것들보다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사단은 우리를 과거에 묶어두게 합니다. 과거의 자랑이나, 과거에 상처에 우리를 묶어서 한 발짝도 앞으로 못나게 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허황된 미래를 꿈꾸게 함으로 오늘을 게으르게 하거나, 좌절감 속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삶을 허비하게 하고, 오늘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시작도 못하게 하고, 개선도 되지 않도록 우리를 묶어둡니다. 그렇기때문에 순간 순간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그 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간의 삶들을 이어갈 때 영원에 잇대어 살게 되는 믿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목자로 부르시는 예수그리스도
주님은 베드로를 목자로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어린양을 먹이고 치는 자가 목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신다면 여러분은 목자로써의 충분조건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는 목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어린양을 먹이고 치시는 목자의 인생을 사십시오. (나눔을 위한 질문 : 1) 지난주일 말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2)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가족과 목장에 한 주간 어떤 사랑을 보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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