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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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1001 그리스도께 뿌리내린 고백적신앙(3)-너희도 이와같이 하라(요한복음 13장... 조회수 : 843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7-09-29

1. 세족례와 섬김
1) 섬김의 목적 
나보다 남이 더 잘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나보다 상대방이 더 많은 하늘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나보다 더 예수님을 잘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제정하신 또 하나의 성례
기독교에서는 성례를 말할 때 세례와 성찬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성만찬을 제정하신 그날 밤 또 하나의 예식을 제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족례입니다.(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공동번역)15.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표준새번역)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3) 세족례의 역사성
교회 역사 가운데 세례식과 함께 오랫동안 시행해 왔었습니다. 주후 694년에 있던 톨레도 제17차 종교회의에서는 교회들이 세족례를 행하지 않는 것을 책망하면서, 정사예배를 드리는 성금요일처럼, 성 세족례 목요일로 지켜 “스페인과 갈리아 전역의 교회”에서 그것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명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메노나이트 신도들은 세례 및 성찬에 덧붙여 세족식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고, 어떤 교파에서는 세속례를 ‘겸손의식’으로 연 4회씩 시행하기도 합니다.

4) 일반교회와 가정교회 안에서의 세족례의 의미 회복
지난세월 한국교회의 신학은 지나치게 구원론에만 집중되어 있었기에 성화의 삶을 의미하는 섬김의 삶은 약화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혼구원과 제자됨의 삶을 강조하는 가정교회는 구원과 성화의 삶의 균형을 이루며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해 가고 있습니다. 제자됨의 핵심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이 세족례를 보여주신 이유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큰 자인가“라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눅22: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제자들의 관심은 늘 예수께서 이루실 정치적인 메시야의 왕국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초미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성공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
주님은 성공에 대한 개념을 바꾸셨습니다. 성공은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성공한자이고 그가 바로 큰 자라 하셨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초과하여 보이는 겸손으로써의 충성. 그것이 바로 섬김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이 갖춰야할 덕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삶은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이(마20:28) 섬기기 위해서라면 성도는 섬기기 위해서 구원받은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 구원해주셨습니다.

3. 세족례를 통해 보내시는 메세지
1) 제자들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 죽음을 눈앞에 둔 스승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사랑의 외침이자 몸의 언어였습니다. 
(2) 주님은 앞으로 자신과 같이 고난의 잔을 마시게 될 제자들을 향해, 그들의 스승이자 주인으로써 마지막 사랑의 스킨십을 해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토록 사랑했다고, 너희의 연약함까지도 사랑했노라. (요 21장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여러분,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부분을. 숨기고 싶고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을, 복음으로 인해 수고하고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여러분의 헌신을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 

2) 섬김의 경계를 재조정해 주셨습니다.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1.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주님은 가룟유다가 주님을 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자들과 동일하게 그의 발도 씻겨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섬김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절에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의미는 충분한 넓이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한계, 섬김의 한계는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까지였습니다.

3) 섬김의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4절 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 웃옷을 벗은 종의 자세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겉옷은 재산이자 또는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옷을 벗으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땅에 오셨던 것처럼 또 다시 모든 권위와 지위를 벗어 버리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2) 수건을 허리에 찬 종의 모습으로 섬겨야 합니다. 
수건을 몸에 두루는 행위는 노예가 주인 앞에서 시중을 들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자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종의 성육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자기편의 섬김이 아니라 제자들 편에서의 사랑이고 섬김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섬김을 본받아 예수님을 따라가는 섬김의 삶을 통해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7절)”고 하신 말씀이 우리 삶에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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