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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0128 은혜를 아는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누가복음 7장 36절 - 50절) 조회수 : 1910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01-26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만찬에 초대받으셨을 때,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과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의 행동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면서,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죄인을 향한 주님의 마음은 어떠한지 알아보자.

Ⅰ. 만찬의 세 주인공(36-37절)
1>바리새인. 그는 왜 예수님을 초대했는가? 악의로 예수님에게서 뭔가 트집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소문이 자자해서 예수라는 사람이 어떤 위인이지 한 번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몬이 저명인사들을 자기 집에 초청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순수하게 예수님을 존경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기는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도 그 동기가 하나만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2>예수님. 예수님은 왜 바리새인의 초대에 응하셨을까?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죄인도 지도층 인사도 차별하지 않으셨다. 또한 바리새인의 내면에 드러낼 것이 있었기 때문에 식사 초대에 응하셨을 것이다.

3>불청객.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죄인이었다. 죄인이라고 하는 호칭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세리나 창녀들에 대해서만 쓰이는 말이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나타났을까?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진심을 받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Ⅱ. 회개, 사랑, 헌신(38-46절)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계속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38). 그런데도 예수님은 가만히 계셨다. 그러자 바리새인이 속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의심하였다(39).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말은 안하고 생각만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을 읽으시는 분이시니까 그의 마음을 아시고 비유를 통해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빚을 탕감해준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됨을 말씀하셨다.

47절 말씀은 ‘사랑을 많이 했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하는 뜻이 아니다.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 많은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그만큼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말하는 죄의 분량이란 죄 자체의 분량이 아니라 깨달은 죄, 다시 말해서 회개한 죄의 분량을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몬이 의인이요 그 여자는 죄인이었지만, 속으로 볼 때는 그 여자는 의인이요 시몬은 죄인이었다. 그 여자가 얼마나 큰 감사와 감격에 넘쳤으면 옥합도 머리도 눈물도 아까워하지 않았겠는가? 반면에 시몬은 얼마나 교만하고 속이 불편했으면 생트집을 잡고 나왔겠는가? 사람들은 육체로 범한 죄만 죄로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 있는 죄를 더 악하게 보신다. 예수님이 세리나 창녀를 질책하신 일은 없어도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거짓에 대해서는 불같은 진노를 발하셨던 것이다.

Ⅲ. 사랑하기에 죄 사함을 받았다(47-50절)
주님은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그녀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런 자신을 받아주신 주님을 많이 사랑하였다. 그것이 곧 용서받음 구원으로 이어졌다. 사람에겐 겉으로 드러난 죄와 속에 감춰진 악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만 어떤 사람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은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진 자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둘 다 탕감을 받았을 때 누가 더 탕감해 준 사람을 사랑하겠느냐고 질문하셨다. 바리새인 시몬은 정답을 말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더욱 사랑할 것입니다(43). 하지만 정답을 알았던 그가 정작 자기 죄는 인정하지 않았으니, 죄를 용서받는 기쁨과 은혜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탕감 받은 정도에 따라 사랑의 표현은 비례한다. 우리의 헌신은 얼마나 감사하느냐에 비례한다. 이 여인은 자신의 죄가 크다는 것을 알았고, 용서받았다는 것이 감사했기 때문에 자기를 잊어버릴 정도의 헌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의 헌신의 기초는 죄를 용서받은 감사다. 1>사역의 보람 때문에 헌신을 하면 사역의 보람이 없어지면 그만 둔다. 2>열매 맺는 기쁨 때문에 헌신하면 열매가 없으면 그만 둔다. 3>복 주신 것 때문에 감사해서 헌신하면 하나님이 더 이상 복 주신다고 느껴지지 않으면 그만 둔다. 우리가 끝까지 열심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는 기초는 용서받았다는 감사다.

용서받은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할 때 시몬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시몬이 이 여인보다 죄가 적다’ 하는 뜻은 아니다. 죄가 많은데 적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짜 싫어하시는 죄는 마음속의 죄다. 교만, 시기, 질투 등이다. 마음속에 훨씬 더 큰 죄를 가지고 살면서도, 술, 담배 안하고, 십일조, 주일 성수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자기가 좋은 신자, 별로 용서받아야 할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헌신이 제한적이다. 이 여인은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발을 만지는 순간 쏟아지는 눈물로 감사가 표현이 되었고 옥합을 드리는 헌신이 나온 것이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마음속 악은 알지 못한 채 여인의 행동을 못마땅해 하였다. 신앙의 경건한 형식을 다 지키고 이렇다 할 범죄를 저지른 일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큰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사에 충실했던 큰아들은 탕자와 같이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기가 어려웠다. 여기 의인들의 불행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많이 회개를 한 사람이 큰 은혜를 받고 의인으로 높임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많이 회개하고 많이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의인을 대표하는 시몬이 죄인을 대표하는 이 여인만큼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였다. 시몬은 자칭 의인이었기 때문에 이 여인만큼 많이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몬은 이 여인만큼 많은 죄를 사함 받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위해 이 여인만큼 많은 희생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몬이 예수님께 무례했지만 대적했던 것은 아니다. 시몬에게 예수님은 그냥 훌륭한 분이었다. 사람들이 예언자라고 부르는 호기심을 일으키는 중

요한 분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분은 아니었다. 시몬은 호의적이었지만 여인과 같은 뜨거운 정열이나 온전한 헌신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시몬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신자들을 생각하게 된다. 많은 신자들이 그렇게 산다.

골 1:16-17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빌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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