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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0701 늦기 전에 돌이키라 (누가복음 11장 37절 – 54절) 조회수 : 2115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06-29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던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오랜 종교적 사상으로 인해 결국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다.

Ⅰ. 겉과 속이 달라서는 안 된다(37-44절)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겉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형식과 가식에 얽매이게 된다. 손을 씻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38). 예수님을 향한 일종의 거부감이자 정죄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손을 아무리 씻어도 속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 예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다. 바리새인들은 비본질적인 것을 신경 쓰느라 본질적인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했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이토록 강하게 질책하신 이유는 그들의 사상과 삶의 방식이 치명적인 결과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경고와 책망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길로 돌이키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더 혹독하게 책망하셨을 것이다. 사과는 겉은 빨갛지만 속은 하얗다. 사과의 겉과 속이 다르다고 사과를 책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사람이 보기에도 역겹다. 이런 표리부동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무섭다.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은 껍데기는 완벽한 종교인이었지만 사실은 평토장한 무덤 같았다. 흔히 3가지를 하고 3가지를 안 하는 것을 좋은 신앙인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예배 출석하고, 십일조를 하고, 봉사를 하면 좋은 신앙인이다. 술과 담배를 안 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좋은 신앙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신앙의 일면일 뿐이다. 이런 것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공의와 사랑이 일상이 되는 신앙인이 참된 믿음의 사람이다.

Ⅱ. 말씀을 들을 때 돌이켜야 한다(45-54절)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항의하고 나섰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욱 강력하게 책망하셨다. 율법 교사들의 위선, 선지자와 사도들을 향한 그들의 박해, 잘못된 지식으로 바른 길을 막고 선 무지를 책망하셨다.

이것은 율법 교사들에 대한 책망이다. 하지만 바리새인들도 우리들도 피해 갈 수 없다. 다른 이들에게는 무서운 짐을 지우지만 자신들은 손가락도 까닥하지 않는다는 책망은 교회의 중한 직분을 맡고있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율법 교사와 같은 직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쉬운 자리다. 그러나 자신은 정작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 중직자, 학생들에게 전도하라고 하면서도 전도하지 않는 교사, 성도들의 성결을 강조하면서 쾌락과 죄에 빠져 있는 목사, 이런 사람들이 외식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기 전에 먼저 짐을 져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사람의 본분이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면 마땅히 책망을 받아야 한다. 성경에는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인 표리부동의 사람으로 나오지만, 우리 역시 위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말은 너무 번지르르한 데 반해 행동은 너무도 빈약한 경우가 많다. 겉모습에 신경을 쓰는 것 이상으로 속사람을 강하게 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예수님의 혹독한 책망은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물론 아팠을 것이다.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굴복시켜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날려 버리고 말았다. 악에 받쳐 예수님께 거세게 달려들어 따져묻고, 예수님의 말을 책잡으려고 했다. 이들은 더 완악해지고 말았다. 이들의 얼굴과 표정을 상상해보자. 분노와 독기가 가득 찬 얼굴이었을 것이다.

말씀 앞에 중립지대는 없다.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 평안과 자유를 얻든지 거부하고 대적하여 더욱 악한 자로 남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은 자들, 말씀을 늘 가까이 하던 이들이 이토록 완악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예배의 자리에 있다거나, 말씀을 배우고 있다거나,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지 말아야 한다. 그 말씀이 우리의 중심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속도 깨끗해지고 있는지, 변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중심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은 위선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셨다. 우리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진정으로 알고 있다면 우리는 위선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바리새인의 쓴뿌리를 뽑아내는 비결은 하나님 아버지를 깊이 아는 것이다.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가고,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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