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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0715 어리석은 부자 (누가복음 12장 13절 – 21절) 조회수 : 852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07-13

외식(1-12절)에 이어 ‘탐욕’을 경계하신다. 세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겁박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그 돈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하시며 탐욕을 물리치라고 하신다. 비유 속의 부자를 왜 어리석다고 하셨을까?

Ⅰ. 예수를 모르는 어리석음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예수님은 분쟁의 중재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탐심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구원의 중보자로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소유에 대한 욕심을 경고하신다.

형과의 유산 분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냉담하게 반응하셨다. 오히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하셨다. 소유의 부족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내면의 탐심을 해결하라는 명령이다. 탐심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보다 혹은 자신에게 적법하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묘사할 때 쓰이는 단어다.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다. 우리가 사는 동안 재물에 대한 욕심은 우리를 끝까지 붙잡을 것이다. 욕심이 끝없는 한 소유에 대한 만족도 없다. 만족함이 없기 때문에 탐심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결국 망하게 한다. 탐심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탐심을 이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엡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Ⅱ. ‘나’만 아는 어리석음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재물에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사는 동안 재물이 넉넉하면 살 만해 보인다. 재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물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재물에 목숨을 걸다시피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보다 재물이 더 필요하다고 여긴다. 재물은 현실이고 하나님은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지금 당장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중이고 재물이 먼저다. 결국 재물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있다. 우리의 마음에 탐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 유난히 반복되는 단어는 ‘나’다. 내가, 내 곳간, 내 모든 곡식, 내 영혼 등의 표현에서 이 부자가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보고 판단함을 알 수 있다. 자기중심 사고의 출발점은 풍성한 소출이다. 하지만 부자 자신의 노력만으로 풍성한 소출이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은혜의 결과였다. 그런데 그 재물에 자신의 존재를 투영했다. 생활에 필요한 양을 초과하는 곡식을 쌓아 두기 위해 자기 나름의 합리적 판단과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는 일이었다. 경제적 관점에서 그것은 합리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그의 재산 관리 능력은 하나님 나라 원리와 무관하였다. 왜냐하면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탐욕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재물이 곧 세상이고 그 세상의 중심은 나다. 재물을 자기 손에 움켜쥐고서 그는 자신의 영혼에게 말한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 이것은 혼자 말이다. 재물을 모을 때도 그것을 즐길 때도 그는 혼자다. 그의 삶에 공동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오직 재물과 벗하며 홀로 세상을 사는 인생이었다. 부자는 ‘내’가 ‘내 곳간에’ ‘내 소출’을 ‘나’를 위해 쌓을 궁리만 하였다. ‘나’라는 말은 유독 많지만, 단 한 번도 이 풍요를 주신 ‘하나님’은 언급하지 않는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이때에 나는 얼마나 베풂을 통해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고 있는가?

Ⅲ. ‘한계’를 모르는 어리석음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때 이 부자가 전혀 계산에 넣지 못한 결정적 변수 하나가 작동한다. 바로 모든 물질과 생명의 주인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합리적인 부자는 단지 ‘어리석은 자’ 일 뿐이다.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가치의 우선순위를 혼동했기 때문이다. 재물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며 자기는 단지 잠시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부자가 보지 못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 속에 다소 갑작스럽게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하나님을 등장시킨다. 하나님은 부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계획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오늘 밤 그의 영혼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랬을 때 어리석은 자가 고려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은 그의 재산을 다시 찾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의 영혼을 다시 찾으실 것이다. 재물은 우리 생명의 일부분을 편안하게도 불편하게도 하지만 생명 자체를 어쩌지는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관하신다.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자는 자신의 노년을 준비했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인간에게 준비는 어쩌면 불가피한 삶의 방식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다 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제자는 달라야 한다. 마치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인 양 인생을 돌보고 준비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다. 우리는 준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고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영원을 위한 준비다. 저장해놓은 것으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려 했던 그의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부자는 창고에 쌓아둔 그 소유가 자신의 생명까지 보장해준다고 믿었다. 소유의 한계를 몰랐다. 또 많은 소유로 행복하고 풍요로운 내일을 장담했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인 줄도 알지 못했다. 안락한 노후(老後) 대책만큼이나 안전한 사후(死後)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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