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50712 은혜의 십자가 아래 (요한복음 19장 17절 - 27절) | 조회수 : 1217 |
작성자 : 교회사무실 | 작성일 : 2015-07-10 |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많은 사건이 있다. 그중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던 그 순간에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거룩하지 못했다.
Ⅰ. 거룩한 희생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예수님은 밤새도록 혹독한 심문과 채찍질을 당하셨다.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셨다. 골고다는 언덕의 생김새가 해골 모양으로 되어 있고, 주로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던 곳이기에 사람들은 그곳에 가기를 꺼렸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해골이라 불리는 골고다(17절) 한 가운데에 십자가 세 개가, 그리고 세 개의 십자가 중심에는 예수께서 매달리셨다(18절). 또한 십자가 주변에는 네 명의 군병들이 서 있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굵은 쇠목이 뼈와 힘줄을 뚫고 박혔다. 그분의 등과 손과 발의 상처에서는 통증이 느껴지고 타는 듯한 갈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예수님의 얼굴은 머리에 쓴 가시관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흐른 피로 범벅이 되었다. 예수님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흘리시며 인류를 위한 가장 거룩한 희생의 이루셨다.
왜 이런 십자가의 죽음을 죽으셔야 했는가? 우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신다.”아무리 말씀하셔도 믿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희생이 있어야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엄청난 모진 고통을 당하게 하셨다. 이것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하는 증표를 보이셨던 것이다. 고난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우리의 자랑이다. 고난의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하심이었다. 그러나 그 주위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면서 감격하고 그를 사랑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감격하기 보다는 그를 미워했다. 그 가운데 제사장들도 있었다(막15:30-32).
Ⅱ. 교활한 제안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빌라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며 감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자기 복수의 도구로 삼았다. 자기가 예수를 풀어주려고 할 때에 이 기미를 알고 자기를 어려움에 몰아넣어서 처형하도록 만든 유대지도자들에게 복수하는 의미로 유대의 왕이라는 명패를 써 붙였다. 예수가 유대의 왕이라는 것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모욕을 주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예수님 십자가 앞에 감격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을 맞아 외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이 그 명패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자칫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라며 권했지만 빌라도는 이를 거절했다. 그들이 교활한 제안을 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이 우습게 보이는 것이 싫었으며, 예수님께 처절한 패배자, 거짓말쟁이, 이단자라는 오명을 붙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빌라도가 부지중에 쓴 그 명패를 하나님은 예수님이 온 인류의 구세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심을 드러내는 섭리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Ⅲ. 저속한 거래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셨다. 십자가를 지실 때는 입고 계시던 옷마저 빼앗기셨다. 군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님의 옷을 가져갔다. 당시에는 옷감이 귀했기 때문에 사형수들의 옷을 병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한 번의 숨을 쉬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계신다. 그런데 십자가 밑에서는 예수님을 못 박은 병사들이 피 묻는 예수님의 옷을 갖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고 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가장 거룩한 임종을 맞고 계신다. 그런데 십자가 밑에서는 가장 저속한 거래가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인들은 하늘의 엄청난 은혜를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옷가지를 취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다.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그들은 세상의 이익과 만족을 얻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늘의 은혜를 알지 못하면 모든 것을 세상의 가치로 결정하기 쉽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옷으로 제비를 뽑는 군인들과 같은 무관심의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으로 사시고 우리가 받을 죄 값을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도 반응이 없다. 또한 믿는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에 감격하여 구원의 소식을 땅 끝까지 가서 전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데 무엇에 쓰려고 구하는 생명과 건강과 물질인지 주님 사역을 거부하고 여기에 매달려 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5: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Ⅳ. 사랑하는 사람들
십자가 주변에는 네 명의 여인들과 사랑하는 제자가 서 있었다(25,26). 다른 제자들이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여 피해 달아났지만 이들은 담대함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와 모친 마리아에게 새로운 가족관계를 맺어주셨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26절). “보라 네 어머니라”(27절). 여인이 죽음에 이르는 해산의 수고를 통해 자녀를 낳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 가족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였던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제자를 품고 교회를 잉태하는 순간이다. 교회는 영적 가족이다.
십자가를 대하는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몇 안 되는 이런 여인들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들을 새로운 영적 가족으로 맺어 주셨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 가족이다.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예수님이 맺어 주신 하늘의 가족을 섬겨야 한다. 이것은 은혜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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