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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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0902 구원의 문 (누가복음 13장 22절 – 35절) 조회수 : 1550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08-31

하나님 나라는 시작도 미약하지만(19절) 들어가는 문도 좁다. 좁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좁게 느껴질 뿐이다. ‘구원 얻을 숫자’에 대한 물음에 예수님은 ‘구원 얻을 기회’에 대한 말로 답하신다. ‘오늘’의 힘씀 없이 ‘내일’의 구원은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 그러나 누구나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구원의 문은 인간의 노력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구원의 문은 믿음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Ⅰ. 구원의 문은 매우 좁다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께 어떤 사람이 물었다. ‘구원을 받는 사람, 즉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그렇게 적습니까?’ 그때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다. 좁은 문이란 고개를 많이 숙여야 하는 문이다. 지극히 겸손해야 한다. 좁은 문은 불편한 문이다. 좁은 문은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님은 그 좁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 주신 구원의 문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원의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문이 너무나 좁기 때문이다. 누구나 넓은 문으로 쉽고 편하게 들어가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편한 길을 선호한다. 극러나 그 길이 생명길인지, 사망길인지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열린 문을 선호한다. 그러나 멸망으로 통하는 문인지 승리로 통하는 문인지가 중요하다. 유일한 생명길인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들만 장차 구원을 받을 것이다. 지금이 기회이니 지체해선 안 된다. 자기를 부정해야 하는 불편해 보이고 손해 보는 십자가의 길(22절)이기에 찾는 사람은 적다. 하지만 이 길만이 생명(구원)의 길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Ⅱ.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야 한다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고후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문이 되어 주셨다. 그래서 비록 좁고 불편하지만 사는 길이기에 반드시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보다 세상을 향해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구원의 문이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중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구원의 문은 영원히 열려 있지 않다. 주님이 문을 닫으실 때가 온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이다. 우리는 그때를 알 수 없기에 서둘러야 한다.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일을 결코 미뤄서는 안 된다. 한번 닫힌 구원의 문을 절대로 다시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는 너무 늦었다. 이제 간청해도 항변해도 소용없다. 주님을 안다고 말씀도 들었다고 호소해 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자처해보지만 모두 부인당하고 거절당할 것이다. 회개와 순종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만 있다.

Ⅲ. 구원의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누구나 구원의 문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구원의 문을 알고 구원의 문 앞에 있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니다.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구원의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이 기적을 보고 구원의 역사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구원의 문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께 구하지 않았다. 두드리지 않았다.

반면에 많은 이방인과 세리와 죄인들은 구원의 문이신 주님 앞에서 두드렸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유대인들보다 먼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구원의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즉 믿는 자에게 열린다.

예수님은 헤롯의 위협에도 예루살렘의 거절을 아시면서도 그 좁은 문을 향해 걸어가신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오랜 자비를 외면하면서도 무탈할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심판의 날을 알고도 심판받을 일을 멈추지 않았다. 거짓 위안만 좇고 거짓 확신에 차 있었다.

구원의 확신보다 구원의 목적을 아는 것이 중요하듯 구원받을 숫자보다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민 신분에 안주하던 자들처럼 교회를 부지런히 드나들고 성경의 문자에만 눈길을 주고 직분과 분주한 활동에 안심해서는 안 된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원의 문으로 보내셨다. 그러나 그 문이 좁기에 그 문으로 나아가려면 믿음으로 견뎌야 한다. 또한 구원의 문은 두드려야 열린다. 한 번 닫히면 열리지 않는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자. 우리가 죄를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내가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지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그가 믿지 않기 때문이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치 않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내가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거절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돕기 원하시는 하나님에게 주저 없이 나오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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