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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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0909 예수님의 기준 (누가복음 14장 1절 – 14절) 조회수 : 68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8-09-07

교회 안 갈등은 대부분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다. 교만한 그리스도인은 일종의 모순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을 믿고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연수가 늘어나는데 겸손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교회 생활이 겸손이 아니라 교만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Ⅰ. 잣대는 나에게(1-6절)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안식일에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가셨다(1).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였다. 바리새인들이 엿보고 있고, 몸이 부어오른 수종병자가 있었다(2). 예수님이 먼저 질문을 하셨다.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3). 그들이 침묵하자 예수님은 그를 고치셨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적이 이미 여러 번 있었다. 그 이유는 안식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고쳐주시기 위함이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이처럼 예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드릴 생각이 없었고, 예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이러한 바리새인 지도자들의 자세와 태도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자신이 싫어하는 지도자에 대하여 반감이 생기면, 예수님에 대해 반감을 갖고 무슨 말을 해도 무슨 능력을 베풀어도 받아드리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처럼 행동한다. 어떻게 하면 유대 지도자들처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그 사람이 싫더라도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존경하고 협조해야 한다. 

요3:1-2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인간은 거짓된 존재다. 종교적 위선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지 자신의 신앙 해석이나 방법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종교적 신앙이 아닌 정직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율법은 나를 낮추기 위한 기준을 제시할 뿐 남을 낮추기 위한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Ⅱ. 자리는 끝자리에(7-11절)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보셨다(7). 비유하시기를 혼인 잔치에 참석해서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자리를 내주는 일이 생기면 부끄러워지니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말씀하셨다(8-9).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16:18). 세상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우선 택하는 이유는 그 자리에 앉으면 자신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정반대다. 세상 질서에 대한 전복이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자리를 취할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버릴 때 드러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히려 초대를 받으면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권하셨다(10). 많은 교회에서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한다. 평신도보다 집사가 높고, 집사보다 안수집사가 높고, 안수집사보다 장로가 높다. 그래서 높은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이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 가운데 존경받는 사람이 있는가? 높아지려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존경심과 권위는 사라진다. 어떻게 스스로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주님의 인생관을 우리가 받아드려서 섬김의 삶을 살기를 결심하고, 종이 되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종이 되기를 결심하면 상석이 별로 탐이 나지 않는다. 종이 앉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잠14: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Ⅲ. 잔치는 힘없는 이들에게(12-14절)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잔치에 청하지 말라고 권하셨다(12). 그들은 은혜를 되갚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반사이익을 기대한 선심을 쓰지 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은혜가 낮은 곳으로 흘러 가기를 원하신다. 고인 물처럼 제자리에서 돌기를 원치 않으신다. 예수님은 오히려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을 초대하라고 하신다(13). 그들은 되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복이 될 것이다(14). 사람에게 되갚음 받는 선심과 선행은 그것으로 결산이 끝나버린다. 그러나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이에게 베푸는 은혜는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갚아 주실 것이다. 갚음이 가능한 이들에게 베풂은 나를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청함 받을 때는 끝자리에 먼저 앉고, 청할때는 끝자리에 있는 사람을 청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주님께서 갚을 능력 없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 잔치의 상석으로 불러주셨기 때문이다.

마6:1-2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신앙생활의 초점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경건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남이 경건하다고 인정해 주는 것을 좋아했고, 선한 일을 했지만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했다. 이들의 신앙생활의 초점은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있었다. 이러한 태도가 교만을 가져왔고 상석을 찾는 모습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생활의 초점을 사람들에게 맞추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맞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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