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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20626 성찬의 의미 (고린도전서 11:17-34) 조회수 : 391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2-06-29

20220626 성찬의 의미 (고린도전서 11:17-34)

성찬은 ‘주님의 만찬’, ‘성만찬’ 등으로도 불린다. 성찬은 우리가 세례와 함께 예수님이 교회에 직접 제정해 주신 성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잔과 빵을 들어 보이시고는 일상의 음식을 주님의 영적인 임재를 나타내는 특별하고 거룩한 음식으로 변화시키셨다. 우리를 위해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신 사랑의 주님이 그분을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 성령을 통해 영원히 임재하겠다 약속하셨다. 주님이 제정하신 성찬은 영적으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신비롭고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 귀한 성찬을 준비되지 않은 느슨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은 나의 영적 성장과 축복을 위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주의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셨다는 점이다(고전 11:27, 30).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우리가 주의 만찬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찬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의 만찬을 어떤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는가?

※ 주의 만찬에 어떤 자세로 참여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뒤를 봄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를 보아야 한다. 바로 예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신 날에 있었던 역사적 과거이다. 성찬에 쓰이는 부서진 빵은 우리를 위해 드려진 그리스도의 몸을, 포도주잔은 그분이 흘리신 피를 나타낸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하였던 그 “잔치”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을 기억하기를 바라셨다.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것은 복음의 핵심이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능력은 그분의 삶과 가르침에서도 나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죽음에서 나온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 우리가 지불할 수 없는 죄의 대가를 대신해서 지불하셨다. 우리는 십자가를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예수의 십자가라는 영적인 실재에 참여하라고 외친다. 바로 성찬을 통해서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실재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난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갈 때 우리는 성찬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과 교제를 나누는 영적인 신비를 경험한다.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살아계신 예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앞을 봄으로 재림과 부활을 기대해야 합니다. 
미래를 보아야 한다. 26절은 성찬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행해야 할 일이라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축복된 소망이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순교자가 아니다. 그분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오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부활한 몸을 가지고 살아계시며, 장차 생명으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를 이끌고 이 땅에 오실 것이다.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그 날 우리는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고 거룩한 몸과 영혼을 가진 존재로 변화될 것이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는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완성된 천국에서 거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자신의 안을 봄으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격을 따지자면 우리 중 누구도 성찬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찬은 죄인들을 위한 것이다. 자신이 죄인인 줄을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은 성찬에 나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성찬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른 태도를 가지고 성찬에 참여하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을 잘 살펴서 죄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고 그것을 주님께 고백해야 한다.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고 그분의 영적 임재를 경험하는 성찬에 정결한 마음과 거룩한 영혼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넷째로, 우리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봄으로 지체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라는 것은 다른 성도들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성도들을 보살피고 화합하기 위해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7) 라고 말하며, 교회의 하나 됨을 강조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찬은 개인이 홀로 거행할 수 없다. 성찬은 공동체가 함께 주님의 십자가와 그 십자가가 가져온 구원에 감사하는 믿음 공동체의 잔치이다. 잔치는 벌여 놓았는데 가족들 간에 서로 골이 파여 있다면 즐거운 잔치가 될 수 없다. 주님이 베푸신 잔치에 초대받은 자들끼리 서로 화목하지 못한다면 잔치를 베푸신 주님을 슬프게 만드는 일이다.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이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길 바란다. 성찬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어, 형제자매 사이에 존재했던 장벽을 머물고, 골을 메우고, 주께 받은 그 사랑을 형제자매들에게 듬뿍 퍼부어주는 변화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한다!

결론
성찬은 바로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미래의 은혜를 확신하고 기대하는,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표현이다. 앞으로 성찬을 받으실 때마다 예수님이 주신 사랑에 대한 감사가 넘치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 감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이웃을 향한 나눔을 통해 표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가 드리는 성찬이 형식적으로, 의무적으로 치르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우리의 눈을 적시고, 우리의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하는, 그런 생명력 있는 성찬이 되기를 바란다. 성찬은 작은 빵조각 하나와 작은 포도주를 받는 소박한 예식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의 마음이 우리에게 강력하게 전달될 때, 우리가 가정과 교회와 이 사회 속에서 작은 예수로 세워지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의 도구가 되는 복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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