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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212 왜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나?(3) (마태복음 3:13-17) 조회수 : 314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3-02-14

20230212 왜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나?(3) (마태복음 3:13-17)

질문: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 대답: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의 자리에 서시기 위해서입니다.

▶ 구속언약(救贖言約, covenant of redemption)이란 무엇인가?
이미 영원 전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인간을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건져낼 방법에 대해 협의하셨고 약속을 맺으셨다. 성부의 지휘 아래, 성령의 지원을 통해, 성자께서 인간의 대표가 되어 죽으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기로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다. 성부께서는 인간의 구원 계획을 전체적으로 섭리하시고 진행하셨다. 성자께서는 인간의 대표가 되기 위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대속제물로서 죽으셨다. 성령께서는 성자께서 이루신 구원이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감화를 주는 일을 하기로 약속하셨다. 이 협의, 약속, 언약을 바로 ‘구속언약’(救贖言約, covenant of redemption)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구속언약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이다. 인간을 구원하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반드시 사람이 되셔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존재, 즉 구속자는 반드시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인 존재이셔야 했던 것이다.

▶ 구원자는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예수님이]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죄에 대해 무한한 징벌인 사망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기 위해서 구원자는 짐승 제물이 아닌,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사망에 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구원자가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조건을 완전히 충족시키신 유일한 분이시다.

▶ 구원자는 반드시 인간이셔야 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구원자가 반드시 온전한 인간이셔야 했던 이유는 그분이 구원하시려는 대상이 천사들이 아니라,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으로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지만,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고, 친히 죄인의 자리에 내려오셨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첫째,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이 인간의 대표임을 보여준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모든 인간의 대표이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는 그의 모든 후손에게 원죄를 가져왔다. 아담은 하나님처럼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겠다고 했고, 그것은 반역이었다. 그런 사망의 형벌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시려고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다. 예수님이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동일시를 통해 이제 예수님이 사람의 대표가 되셨다. 한 사람 아담을 통해 인류에게 사망이 덮치게 되자, 예수님은 인류에게 부활과 생명을 가져오는 한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신 거다. 또한,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데도 죄인의 자리에 서셨다. 죄 없는 분이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죽으심으로써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만드신 것이다. 인간만이 인간의 대표가 될 수 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는 백성 가운데 나와야 한다. 아담이 온 인류의 대표가 된 것처럼, 그리스도도 인간이 되셔서 모든 신자의 대표가 되셨다.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않음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 우리도 역시, 나 한 사람으로 인해 교회와 사회와 나라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가 그 중요한 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둘째,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이 인간의 연약함을 공감하심을 보여준다.
공감(共感)은 한자로는 “함께 느끼다”는 의미를 가졌고, 영어로는 ‘컴패션’(compassion)인데 “함께 아파하다”라는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예수님은 안 겪어 보셔도 우리 고통을 잘 아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다. 인간을 알기 어려워서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님은 사람이 안 되어 보셔서 우리 아픔을 모르잖아요!”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우리의 자리에 오셨고, 우리의 아픔과 상황을 다 겪으신 것이다. 긍휼과 사랑 때문에, 공감의 자리로 내려오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자. 또한 예수님의 공감을 받은 자로서, 타인에게 공감의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잘 관찰하고 잘 파악하려고 애써야 한다. 공감해주는 것이 섬김이며, 공감에 치유의 능력이 있다. 우리 주님이 그런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공감함으로 남을 더 잘 이해하고, 남을 더 잘 섬기고, 남에게 더 용기를 주는, 선한 영향력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 결론: 예수님께 공감받고, 예수님처럼 공감하라!
우리는 예수님께 공감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연약한 자이며, 원수로 행한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찾아 오셨다. 요한이 주는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그분이 우리처럼 죄인의 자리, 연약한 자의 자리, 원수의 자리에 서셨음을 보이셨다. 그분이 우리의 대표가 되셨고, 그분이 우리를 공감하셨다. 그 파격적인 공감의 힘으로 우리가 있어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셨고, 그 놀라운 사랑의 결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사랑의 일부라도 우리 곁의 지체들에게 행하는 것이, 받은 사랑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주님께 받은 공감으로 주님처럼 공감하여,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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