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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219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사도행전 21:1-16) 조회수 : 383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3-02-22

20230219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사도행전 21:1-16)

▶ 바울의 예루살렘행 계획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교회가 하나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랬다. 3차 전도여행 중에 이방인 성도들에게 흉년으로 고난 중에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모았고, 이를 전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바울은 이번 예루살렘 방문이 자신의 인생 최대의 위기가 될 것을 예감했다. 유대인들의 박해가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성령님께서는 바울에게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겁내지 않았고,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확신했다. 

▶ 두로 제자들의 반대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행 21:4). 두로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권면하는데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제자들은 바울을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에 바울에게 고난 속으로 걸어들어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을 변치 않았다.

▶ 가이사랴 제자들의 반대와 바울의 각오
그 다음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과 100킬로미터 떨어진 항구도시 가이사랴에 도착했다. 10절에 보니,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왔다. 그리고 아가보 선지자는 바울의 허리띠를 가지고 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체포와 고난에 대해서 예언했다. 바울은 이 예언을 보고 다시 한 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싸인으로 여겼다. 하지만 가이사랴에서도 제자들은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반대하였다. 같은 예언을 듣고서도 이렇게 바울과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다르게 이해한 것이다. 가이사랴의 성도들까지 예루살렘행을 만류하자, 바울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행 21:13상). 바울은 ‘성도들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함을 확신했다. 결국 바울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하).

▶ 제자들의 마음을 바꾼 말: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기 원하는 바울의 각오를 들은 제자들은 자기들의 고집을 멈췄다(행 21:14).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이 말이 그들의 귀를 지나 가슴을 강타했을 때에, 그들은 바울 사도를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동의하게 됐던 것이다. 사울이 핍박했던 그 이름,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바울이 목숨을 내어놓고 달려가는 모습에 제자들은 마음을 바꾼 것이다. 

▶ 가이사랴 성도들의 예루살렘행 합류
며칠 후에 ‘바울과 유럽교회, 소아시아교회 대표단’만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이사랴의 제자들’도 여장을 꾸려, 함께 바울을 경호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동행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은 고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면서도 마음이 힘들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자기와 함께 그 길을 가는 동역자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 바울의 동역자들: “우리”
그리고 바울에게는 특별한 동역자들이 더 있었다. 사도행전 21장과 27장 곳곳에서 나타나는 ‘우리’이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나오는 부분을 “우리-단락들”이라고 부른다. 성경주석가들에 의하면 여기 “우리”라는 표현에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와 실라와 디모데 같은 핵심 동역자들이다. 가이사랴와 로마의 감옥에 갇혔던 사람은 바울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고 불리는 바울 ‘더하기’ 동역자들이었던 것이다. 풍랑을 만나 죽을 위기를 겪은 것은 바울 혼자가 아니라 바울 ‘더하기’ 동역자들로 이루어진 “우리”였던 것이다.

▶ 바울의 고난: ‘나’만의 고난이 아니라 ‘우리’의 고난
홀로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바울도 사람인지라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발걸음이 제법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의기소침해지지 않았다. 유럽과 소아시아 교회의 구제헌금을 전달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렇게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예루살렘에서의 임무들을 완수할 수 있었다. 이는, 성령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라고 표현된 바울의 동역자들이 항상 그의 옆을 든든히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위험 속으로 뛰어들 때에, 함께 손잡고 그 위험으로 나아가겠다고 자청하는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옆에 이런 동역자들이 있길 바란다! 나의 목장에서, 나의 사역부서에서, 삶공부를 통해, 함께 비전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주님 나라를 세워가는 동역자를 만나십시오! 아니 만드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지만, ‘함께’ 고난받는 동역자의 존재로 인해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란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기로 함께 결단하며, 결단한 삶을 서로 격려하는 동역자들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변질되지 않고, 주님께 변함없는 신실함을 보여드릴 수 있을 줄로 믿는다!

▶ 결론: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난을 받았지만 “그 예수의 이름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홀로가 아니다.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동역자들이 우리와 함께 믿음의 길을 걷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 아시는 우리의 예루살렘은 어디인가? 홀로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동역자 된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의 예루살렘’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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