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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625 사라의 세 가지 웃음 (창세기 21:1-13) 조회수 : 187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3-06-27

20230625 사라의 세 가지 웃음 (창세기 21:1-13)

▶ 하나님의 약속과 사라의 웃음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손들이 많아져서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같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여종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서라도 대를 이으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사라는 웃음으로 반응하였다. 특별히 본문을 살펴보면 사라가 보인 몇 차례 웃음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잘못된 웃음 (1): 불신의 웃음
사라가 웃은 잘못된 웃음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불신의 웃음’이다. 창세기 17:17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그가 “엎드려 웃었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불신은 아니지만, 자신의 상식와 충돌되는 말에 본능적으로 반발을 했던 것이다. 어쩌면 사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 두려웠거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너무 커서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약속이 크든 작든, 어려워 보이든 쉬워 보이든, 그것은 우리 눈에 차이일 뿐이다.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는 차이가 없다. 아무리 큰 약속이라도 아무리 어려워보이는 약속이라도 하나님께는 차이가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그것은 실현 가능한 약속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반복하여 약속을 주셨지만, 두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신의 웃음을 웃고 말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막 9:23-24).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실 때 사라처럼 불신의 웃음을 짓지 말고,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마 약속하신 것을 의심 없이 믿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 잘못된 웃음 (2): 집착의 웃음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창 21:8). 본문에 ‘웃음’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라가 친지들과 동네 사람들을 불러 함께 “웃고 떠들면서” 음식과 음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거다. 얼핏 보기에 이 웃음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웃음은 문제가 있다. 이 웃음은 집착의 웃음이다. 왜냐하면 사라는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아들에게 마음을 집착했다. 사라는 사실상 이삭을 우상숭배하고 있었던 거다. 우상이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면, 우상이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우상이 되어버렸음을 하갈과 이스마엘에 대한 사라의 분노를 통해 알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신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자녀가 우상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부모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가 대신 이루게 하려는 마음으로 자녀를 우상화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란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부모에게 위탁하신 하나님의 소유다. 부모의 인생의 성패는 자녀의 성공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달려 있다. 자녀의 인생의 성패도 세상 성공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달려 있다. 오직 하나님만을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삼으시기 바란다. 자녀가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행복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 올바른 웃음: 은혜의 웃음
사라가 웃어야 할 올바른 웃음은 불신의 웃음도 아니고, 집착의 웃음도 아니다. 하나님이 사라에게서 보기 원하시는 웃음은 바로 은혜의 웃음이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 100세의 아브라함과 90세의 사라가 아들을 잉태하였고 낳게 되었다. 이것은 두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 하지만 1년 후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실제로 성취되었고, 사라는 하나님이 자신을 돌아보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은혜의 웃음’을 웃게 되었던 거다. 우리가 늘 기억하고 늘 기대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웃음 짓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 결론: 참 이삭이 주시는 은혜의 웃음을 웃으라!
“은혜란 내 인생에 하나님이 필요함을 어린아이처럼 순전히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완전히 의존하는 것이다. 즉 은혜란 ‘즐거운 거지’가 되는 것이다”(C. S. 루이스, 『네 가지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갈망하고, 요청하는 ‘즐거운 거지’가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의 절정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은혜의 웃음을 짓게 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란다! 삶의 무게로 비틀거리고, 닥쳐온 고난으로 아플 때마다, 은혜로우시며 긍휼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신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란다! 참 이삭이신 예수님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기를 기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하며, 경배하며, 증거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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