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0929 엠마오에서의 성찬, 우리의 성찬 (누가복음 24:13-35) | 조회수 : 109 |
작성자 : 교회사무실 | 작성일 : 2024-10-02 |
20240929 엠마오에서의 성찬, 우리의 성찬 (누가복음 24:13-35)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게다가 예수님은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 16:7)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이 말씀의 진의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 성령님이 성도들에게 임하실 것이기에 더 유익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물리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성도들을 통해, 성찬을 통해 우리와 물리적으로 만나신다.
1. 감각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스도인은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시각(視覺)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목격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형제자매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청각(聽覺)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찬양을 듣고 부름으로 은혜를 받는다. 촉각(觸覺)은 어려움 속에 있는 지체의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순간, 따스한 말과 함께 따스한 포옹을 해줄 때, 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후각(嗅覺)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향과 같이 올려진다는 성경 구절(시 141:2)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각(味覺)은 성찬을 통해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감각이다. 성찬에서 떡과 잔을 나눌 때,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며, 예수님의 임재를 물리적으로 체험한다.
2.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의 주님과의 만남
이러한 미각적 경험이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이야기에 나온다. 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엠마오의 집에 도착하여 예수님이 떡을 떼시는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다. 떡을 나누는 물리적인 행위가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는 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떡을 떼는 순간, 제자들의 눈이 열렸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찬을 통해 영의 눈이 열려 예수님의 임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3. 성찬을 통한 예수님의 임재 경험
성찬에서 떡을 떼며,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 우릴 위해 찢겨졌음을 기억한다. 성찬에서 잔을 마시며, 우리는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씻기 위해 흘려졌음을 기억한다. 이때 우리는 단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 우리는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다시 오실 그분을 소망하며 기대하는 것이다. 성찬은 단지 상징적인 행위가 아니다. 성찬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이 주신 구원의 의미를 물리적으로 상기시켜 준다. 떡을 나누고 잔을 마시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을 물리적으로 체험하고, 예수님의 희생을 감각으로 경험하게 된다.
4. 떡: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상징적 의미
예수님이 나눠주신 '떡'은 그분의 몸을 상징한다. 이 떡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는 영적 행위이다. 구약의 유월절에서 사용된 무교병은 부패의 상징인 누룩이 없는 빵으로서, 죄와 허물에서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이 떡은 ‘죄 없는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며,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몸이 찢겨진 것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성찬에서 떡을 먹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희생을 깊이 생각해야 하며,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5. 잔: 새 언약을 이루신 예수님의 피
잔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구약에서 피는 생명과 연관되어 있다.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희생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렸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이 필요함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하지만 옛 언약은 불완전했다. 일시적인 해결책이었다. 영원한 속죄를 제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피를 통해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셨다. 예수님의 피는 단순한 제사 제물의 피가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영원히 구속하는 능력 있는 피인 것이다. 성찬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6. 성찬의 현재적 의미: 주님의 임재와 함께하는 시간
성찬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을 상징하며,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공로를 의지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성찬식에서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겠다(요 6:55-56) 약속하신 것이다. 또한 성찬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연합을 나타낸다. 성찬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공동체의 경험으로서,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인 것이다.
7. 성찬의 미래적 의미: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시간
또한 성찬은 미래를 바라보는 소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음을 기념하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장차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고대한다. 성찬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다가옴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인내하는 삶을 결단하는 시간인 것이다.
▶ 결론: 성찬을 통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합시다!
성찬은 단순한 종교 예식이나 상징적 행위가 아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고, 그분의 실제적인 임재를 경험한다. 떡과 잔을 나누는 물리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으며,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시며, 여전히 우리를 향한 사랑을 베푸신다는 진리를 확신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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