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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41006 사랑의 섬김은 기억됩니다 (히브리서 6:9-12) 조회수 : 181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4-10-08

20241006 사랑의 섬김은 기억됩니다 (히브리서 6:9-12)

1. 자기 행위가 기억되기 원하는 인간의 욕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 중에 하나가 인정에 대한 욕구다. 누구든지 자기가 한 일을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기억해주길 바란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은 교회 안의 모든 수고가 기억되고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수고는 잘 알려지지 않고 묻히게 된다. 결국 속에서 섭섭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2. 우리 행위는 잊혀지는가? 아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드러나지 않는 섬김은 그렇게 잊혀지고 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고 “사랑으로” 성도를 섬긴 행위는 하나님을 섬긴 것과 똑같이 가치있는 일로 여기신다. 그래서 그 행위를 결코, 결코, 결코 잊지 않으신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하나님은 선한 행위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신다. 기억하셔서 반드시 보상하신다.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면 혹시 사람이 우리의 행위를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힘을 낼 수 있고, 계속해서 이 섬김을 감당할 이유를 갖게 된다. 

3. 행위가 왜 중요한가? 참된 믿음과 구원이 반드시 동반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에게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참된 믿음과 참된 구원에는 행위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물론 성도가 구원 얻기 위해서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에겐 반드시 선한 행위가 따라온다. 예수님은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셨고, 야고보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다. 주의해야 할 것은 행위가 있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믿음이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자기영광을 위해서 선행을 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올바른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위를 가져오게 되어 있다. 감사하게도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믿음의 열매를 사랑의 섬김이라는 모양으로 과거에 맺었고, 또 지금도 맺고 있다. 비방을 받고, 환난을 겪고,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들은 굴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갇힌 자를 도와주었다. 심지어 자기의 소유를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당하였다”고 기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선한 행위를 기억하실 뿐 아니라, “더 낫고 영구한 소유”를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4. 언제 행위가 나타나야 하는가? 죽을 때까지! 끝까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히 6:11). 사랑의 섬김은 언제까지 나타나야 하나? 끝까지! 끝까지! 나타나야 한다. 마라톤이 42.195킬로미터인데 42킬로미터 뛰고 마지막 195미터 남았는데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리면 완주 메달을 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의 삶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고, 그 믿음의 열매인 선한 행위도 끝까지 나타내도록 힘써야 한다. 

5. 우리의 행위, 사랑의 섬김을 지속하는 방법
우리가 과거에 많이 섬겼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다. 지금 많이 섬기고 있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의 섬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조언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상급에 대한 소망을 품으라!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내 섬김에 대한 상급을 주실 것이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섬김을 감당해야 한다. 둘째, 선한 일에 부지런을 내라! 부지런해야 사랑할 수 있고, 섬길 수 있고, 선한 행위를 나타낼 수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게으름을 가지고 있다. 날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목표를 매일 확인하고 어떻게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 기도하며 열심을 낼 수 있길 바란다. 셋째, 충성스럽게 인내하라! 충성스러운 사람은 맡겨진 사명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 어려움을 잘 참는다. 이 인내의 모델은 오늘 본문 뒤에 나타난 아브라함이다(히 6:13-15).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열방을 향한 복이 되라는 사명을 감당했으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번성을 누렸다. 물론 인내는 무작정 참는 게 아니라, 목표를 위해서 참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신 사명을 성취해야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충성스럽게 인내하길 바란다. 

6. 결론: ‘바로 그 관객’이 여러분의 섬김을 잊지 않으십니다!
섬김의 모든 시간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마음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내 인생극장에 아무 관객이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때로는 웃으시며, 때로는 우시며, 내 인생극장의 모든 장면을 지켜보시는 ‘바로 그 관객’, 하늘 아버지가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사랑의 섬김을 통해 약하고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또한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하늘의 복과 상급을 누리는 울산시민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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