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1103 성도가 낙심하지 않고 사는 비결 (고린도후서 4:16-5:10) | 조회수 : 91 |
작성자 : 교회사무실 | 작성일 : 2024-11-05 |
20241103 성도가 낙심하지 않고 사는 비결 (고린도후서 4:16-5:10)
살다 보면 우리의 육신이 점차 쇠락해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의 쇠퇴 때문에도 그렇고, 남은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이 찾아올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현실 속에서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갖고 살 수 있다”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성도가 낙심하지 않고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 육신은 낡아지나 믿음과 인격이 주님을 닮아가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바울이 복음 전파 중에 겪은 고난들이 겉사람의 낡아짐에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시기는, 이미 그가 시리아와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등의 지역을 다니면서 20년 넘게 복음을 전한 때였다. 바울은 오래도록 복음을 위해 고생한 자신의 손과 발과 몸을 바라보면서 안쓰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쇠퇴와 상처에 안쓰러움을 느낄 순 있지만, 결코 낙심하지는 않는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속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존재를 가리킨다. 감사하게도 속사람은 성령님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 지어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 날마다 주님을 더 닮아가는 변화를 경험한다. 성령님께서 신자들의 속사람을 새롭고 강하게 하신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마음에 임재하신다. 그래서, 성도 개인과 공동체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게된다. 우리의 몸은 날로 약해지고 낡아지지만, 성령님이 우리 내면을 강하게 하심으로, 감사가 넘치시길 바란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그분과 동행함으로, 매일매일 하나님을 닮아가시길 바란다!
둘째, 삶 속에 환난이 있지만, 크고 무겁고 영원한 영광이 기다리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고난을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고난은 주어진 이유 혹은 목적이 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이루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바울이 겪은 고난은 오히려 지속적이었고 무거웠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난들을 일시적이고 가볍다고 말하는 이유는 고난을 통과한 후에 장차 누릴 영광이 너무나 크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바울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고난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다. 고난은 영원한 관점에서 볼 때만 유익하다. 현재의 관점으로는 고난이 주는 유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심으로, 성도도 장차 부활시키실 것을 보증하셨기 때문에, 성도는 영광스러운 부활을 지금부터 주목하며 믿으며 기대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겪는 고난이 본문 말씀처럼 가볍고 일시적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은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무겁고 영원하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어려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시기 바란다!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광을 소망 가운데 기대하며 살아가시길 축복한다!
셋째,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몸으로 땅에서 사는 시간은 주님과 따로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시간도 말씀과 기도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직접 뵙고, 그분을 보고 만질 수는 없는 시간이다. 따라서 바울은 8절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 선언한다. 바울은 이 땅에서 육체를 입고 사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더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땅에서 사는 것도 담대하게 선택할 수 있고, 또 육신을 떠나 주님과 거하는 것도 담대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9절 말씀대로 “몸으로 있든지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바울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임을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들을 신실하게 사용하였는지,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유익한 열매를 맺었는지에 대해 평가를 받을 것이다. 성도인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는 예수님 보혈 덕분에 합격점을 받지만, 우리의 삶에 대한 평가가 남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목숨을 지키느냐 잃느냐가 아니다. 어느 길이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느냐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시고 그 일을 행하는 길로 나아가시기 바란다! 이 땅에 몸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을 받는 일로 판명되게 하시기 바란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 최고의 기쁨을 드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 결론: 고단한 현실에 낙심치 말고 소망을 품고 삽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때때로 영적으로 후퇴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의 연단 속에 시련과 실패를 겪어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결국 신자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연단을 견뎌내면, 결국 우리 믿음은 진보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란다! 육신이 쇠락하고, 영혼이 시련을 겪더라도, 소망을 품으시기 바란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을 상급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굴의 신앙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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