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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50223 지나가는 세상, 영원하신 하나님 (요한일서 2:15-17) 조회수 : 91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25-02-25

20250223 지나가는 세상, 영원하신 하나님 (요한일서 2:15-17)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며, 성공과 부와 쾌락과 권력을 약속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나를 사랑하라, 그러면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 그러나 작은 글씨로 귀퉁이에 이렇게 적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건적이며 잠시뿐이다.” 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러브레터, 즉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셨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변치 않는 사랑, 끝없는 기쁨,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고 계신다.

오늘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점검할 수 있길 바란다. 나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것을 쫓아 살고 있는가, 아니면 결국 사라질 허상을 쫓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열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져 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세상을 사랑하는 일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양립할 수 없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하나님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명령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체제, 세력이다. 따라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사회와 단절하라거나, 비기독교인들과 관계를 끊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 욕망, 우선순위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미다. 이 세상의 세력과 체제는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교만과 탐욕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반역하는 성향에 기울어져 있어서 사람들을 하나님과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만일 우리가 세상의 가치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나님 사랑에서 멀어지게 될 거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타협되고 변질 될 거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세상을 사랑하는 일은 양립할 수 없다고 경고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4:4). 세상과 하나님은 정반대의 길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우리가 동쪽으로 가면서 동시에 서쪽으로 갈 순 없다. 우리가 하나를 사랑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하나는 거부하게 된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누구를 사랑할지 선택해야 하는 거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도 요한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더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를 위해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헌신해야 한다. 성공과 편안함과 인정보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것에 참 행복과 기쁨이 있음을 발견하고 경험해야 한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세상의 압력에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한다. 지나가는 세상 안에서 기쁨과 안전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안전을 찾아야 한다. 빛이 들어올수록 어둠이 물러나듯,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세상에 대한 욕심과 미련은 사라지게 된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내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지 마음을 들여다 보시고,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아버지요 나의 선한목자이신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길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둘째, 사탄은 세 가지 욕망으로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놓으려 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하나님을 떠나려 하는 인간의 죄성이 작용할 때, 그리고 사탄이 그러한 죄성을 이용해 타락시키려 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세 가지로 설명한다. 바로,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이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반역하는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왜곡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육신의 정욕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왜곡되는 현상이다. 여기에서 육신은 몸 자체가 아니다. NIV 성경은 육신혹은 육체“sinful nature”(죄악된 본성)라고 번역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5:17). “자기 중심적이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악한 성향이 여기 육체혹은 육신의 의미다. 육체 혹은 육신은 성령의 성향과 상반되는 악한 성향이다. 따라서 육신의 정욕은 일상 속의 악한 습관과 성향을 가리킨다. 성적인 타락, 탐식, 게으름, 중독과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면 단호하게 끊어내도록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안목의 정욕은 무엇인가? 눈이 죄의 통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윗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었다. 아간은 여리고성의 보물을 보고 탐욕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우리도 오늘날 기업들이 끊임없는 안목의 정욕, 소유의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한다.

이생의 자랑이 무엇인가? 교만, 자기 과시, 나를 하나님보다 높이려는 태도를 말한다. 단순한 자부심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 능력, 재산, 지위를 하나님보다 더 자랑하고 의지하는 태도다. 오늘날 세상의 가치관은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우리 자신을 높이라고 가르친다. 힙합 노래의 가사에서, SNS의 포스팅에서, 우리가 받는 메시지는 너의 외모와 소유와 즐김과 수준을 은근히 자랑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호텔에 잘 정도로 부자예요. 나는 이런 사람과 셀카를 찍을 정도로 인정받는 사람이에요. 나는 이런 학교를 나와 이런 회사에 다닐 정도로 똑똑해요.” 물론 SNS를 통해서 PR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라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SNS에서 PR를 넘어선 교만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세상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함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셋째, 세상은 지나가지만, 하나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한 상급과 기쁨을 얻는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세상은 겉으로는 강하고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붕괴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7:31도 같은 말씀을 한다. “...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31). 세상의 강하고 화려한 것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광활한 땅을 지배했던 제국들이다. 하지만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와 같은 제국들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지만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화려하고 강한 것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가버리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영원의 주관자가 되시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세상의 일시적인 특징과 대조하여 이렇게 선언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세상은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 안에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누구인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 것이니라”(4:34)하셨던 예수님처럼!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하셨던 예수님처럼! 바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해지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자이다. 이런 자는 자기 스스로는 영원하지 않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사귐을 갖게 되므로,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영원히 거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가장 안전한 영원한 투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나님께 드려진 삶은 영원히 남는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는지 묻고 있다. 세상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일시적인 즐거움을 누리겠지만 영원은 잃어버릴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오늘의 유혹과 핍박을 이겨낸다면 영원한 안전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아버지의 임재 속에 거하는 상급과 기쁨을 주신다는 약속을 붙잡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결론: 영원한 것 위에 내 인생을 세우자!

우리는 모두 두 길 사이에서 서 있는 나그네와 같다. 한 길은 넓고 화려하여 많은 사람이 걸어가고 있지만, 끝에는 허무와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길은 좁고 험하지만, 그 끝에는 영광과 생명이 있다. 오늘도 세상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 길로 오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 반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창조했고, 너를 사랑하며, 너를 위해 내 생명을 주었다. 나와 함께 영원한 길로 걸어가자!” 이 선택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 선택을 통해 우리가 지나가는 가벼운 것을 얻게 되는지, 영원하고 무거운 것을 얻게 되는지가 판가름 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좁고 힘들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은 참된 생명의 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를 이용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조건을 걸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건 없는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세상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택하는 삶을 일평생 신실하게 살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영원히 거하는 지극한 복을 누리는 울산시민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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