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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60828 화해와 복수(창세기 33장 1절 - 20절) 조회수 : 775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6-08-26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으로 인하여 상처나 피해를 받기도 한다.
상처나 피해를 받게 되면 대응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화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복수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화해보다 복수 쪽을 선택한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겨도 화해하기보다는 헤어지는 쪽을 선택하고, 목장에 문제가 있어도 화해하기보다 목장을 안 나가던지 교회를 옮겨버린다.

왜 사람들은 화해보다는 복수 쪽을 택하는가?
복수는 쉽지만 화해는 힘이 들고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Ⅰ. 형제와 화목하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복수보다는 화해 쪽을 선택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본성이 화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고후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마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하나님께서는 화해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와 화해하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서로 화해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화해보다 복수가 쉽지만 쉽다고 해서 그것이 최선이 아니고 생명의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Ⅱ. 드러난 은혜의 섭리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야곱은 이전과는 달리 맨 뒤가 아니라 맨 앞으로 나아가 형 에서를 맞이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마음이 누그러진 에서도 동생 야곱을 껴안고 화해하였다.

자기 지혜와 욕심으로 살았던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은 브니엘의 하나님으로 일하신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야곱을 이스라엘로 이끌고 있다.

이십 년 동안이나 계속된 죽일듯한 에서의 분노의 감정은 이미 눈 녹듯 녹아 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께서 에서 안에서도 일하셨고 약속하신 축복을 따라 은혜를 내리셨기 때문이다. 이 은혜가 여전히 우리를 이끌고 있다. 야곱과 에서의 변화가 보여주듯,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는 각자의 삶에서 은밀히 드러난다.
 
Ⅲ. 각자의 자리에서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에서는 친히 야곱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자청하였다. 야곱은 어린 자식과 새끼 딸린 짐승을 들어 정중히 사양하였다.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은 천천히 행하여 숙곳에 이르러 집을 짓고 가축들을 위해 우릿간을 지었다.

동행하자는 형 에서의 제안을 야곱은 거짓말을 지어가며 거절하였다. 먼저 가시면 제가 쫓아가겠다고 말만하고 반대 방향인 숙곳으로 향하였다.

이런 야곱을 보면 아직도 에서가 못 미덥고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사실 에서보다 더 변해야 하는 사람은 야곱이다. 그가 지금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야곱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품이 변하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방법은 옳지 않았지만 야곱의 생각은 맞다. 어떤 때는 우리가 화목하게 살기위해서 떨어져 살아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전부 예수님과 같은 영성을 갖추었으면 누구와도 화목하고 친형제처럼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의 분수가 그만큼 되지 못하고 영적으로 미숙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형제이지만 각자 갈 길이 있고 살아갈 삶의 영역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 임하는 은혜는 차이가 있지만 결국 은혜가 주의 뜻을 이룰 것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에 좋은 일이라면 부딪쳐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내가 화해를 청했다가 저 사람이 거절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두려움이 있다. 화해하려고 시도했다가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두려움도 있다. 저 사람은 고집쟁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염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화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해는 하나님의 뜻이다. 에서의 마음도 변화시키신 하나님께서 나와 화해해야할 그 사람의 마음도 변화시켜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화해를 시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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