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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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0129 버려야 사는 인생 (창세기 43장 1절 - 34절) 조회수 : 891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7-01-26

아끼다 못 먹는 음식이 있다. 안 입다 철 지난 옷들이 있다. 기대하다 품을 떠난 자식들이 있다. 시공간을 사는 인간의 한계가 삶의 여러 대목에서 구멍을 만든다. 그때마다 과연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축복만 아니라 비우시는 은총으로도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환기시켜주시는 것 같다. 야곱은 스스로 움켜쥐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하고 더 많이 잃어버리는 아픔을 경험하는 인생을 살았다. 어찌 보면 참 짠하다가도 거기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Ⅰ. 야곱이 베냐민을 내려놓다

6.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절대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하지 않겠다는 야곱의 고집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 가져온 곡식이 떨어졌다. 곡식이 있는 곳은 애굽뿐이었다. 다시 요셉 앞에 조아리지 않으면 남은 가족이 다 죽게 된다. 곡식을 얻으려 갈 야곱의 아들들과 인질로 잡혀 있는 시므온까지도 위태로워진다. 영락없이 정탐꾼으로 몰릴 처지다. 그런데도 야곱은 요지부동이었다.

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아들 유다가 아버지 야곱을 설득하였다. 달래기도 하고 강하게 압박하기도 하는 것이 꼭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 같다. 이런 저런 말에도 통하지 않자 유다는 자신이 담보가 되어서라도 베냐민의 안전만은 꼭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였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는 하나님도 믿고 자기 지혜도 믿는다. 여전히 하나님만이 아들을 지키신다는 믿음은 없다. 항상 그랬듯이 인간적으로 총리의 환심을 사고 마음을 누그러뜨릴 방안을 제시하였다. 살면서 풀기 힘든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는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면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항상 두려움에 젖어 살게 된다. 반면에 죽기를 각오하면 그 가운데 사는 길이 열린다.

Ⅱ. 회복된 ‘우리’ 의식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우리가 된 형제들의 모습이다. 요셉을 다시 만난 형제들은 자루 속에 들어있는 곡식 값에 대해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형제들의 발언 속에는 유독 ‘우리’라는 말이 많이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루를 멘 한 형제를 희생시켜 나머지가 안전하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따로 따로가 아니라 하나였다. 같이 잘못했고 같이 책임지겠다는 태도이다. 형제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이기심 때문에 한 형제를 분리시켰던 악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롭거나 편할 날이 없었다. 그동안 야곱의 가정을 위태롭게 했던 것은 곡식의 부족만이 아니었다. 곡식의 부족은 가족의 진정한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하는 태도, 동생을 향한 형제들의 시기와 속임수,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요 위로의 아들을 팔아넘김으로 아버지께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등 야곱의 가정은 관계가 뒤틀어져 있었다. 그것은 복, 즉 생명력을 누리지 못하는 가정이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은 가정이다. 그 가정이 물질적으로 부요해지기보다는 관계가 온전히 회복될 때 타인도 복되게 하는 복의 상속자 가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그 가정을 회복하고 계시는 것이다.

Ⅲ. 하나님과 사회에 유익한 사람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찾으시고 하나님이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도 사람들이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사람이고, 마음 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에게도 사회에게도 유익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요셉은 자기가 애굽에 팔려오고 총리대신이 된 것은 자기 가족들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창45:5-8).

그런데 형들이 이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팔아먹은 죄를 회개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어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복을 위하여 형들을 시험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1>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쓰신다.
2>책임감 있는 사람을 찾으시고 쓰신다.
3>질투에서 자유한 사람을 찾으시고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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