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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0430 부활과 계명에 관한 놀라운 가르침 (마태복음 22장 23절 - 40절) 조회수 : 898
  작성자 : 교회사무실 작성일 : 2017-04-28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중에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부활 논쟁으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했다. 만약 죽음 후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의 삶만이 진정한 실제가 될 것이다. 부활에 대한 불신은 사람을 현세 지향적이며 물질 중심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는다. 죽음을 새로운 시작, 곧 영원으로 향하는 관문으로 여긴다.

Ⅰ. 부활은 있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이 질문은 예수님을 웃음거리로 만들자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도리어 부활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이들이 성경을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하셨다. 이미 구약 성경에 부활이 약속되어있다.

단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사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또 이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존재이시고 전지전능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묘한 질문을 많이 한다.

30절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구절을 인용하셨다.

출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는데 시제가 현재다. 만일 이 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 시제 대신에 과거 시제를 쓰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미 죽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셔서 지금도 살아있는 그들의 현재의 하나님이시다.

부활은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가족에게 전도해야 한다.

고전15:42-43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마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눅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Ⅱ. 계명은 사랑이다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도전이 끝난 후에 최후의 도전이 있었다. 도전의 내용은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에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는 것이다.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교훈은 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해드렸던 것은 계명이 사랑에 기초한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마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이들의 문제는 율법을 사랑과 분리하여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계명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사시기 바란다.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관련된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에 맞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정의감이 강해서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좋아하는 분들은 조심하시기 바란다. 그러한 정의감과 비판에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으면 바리새인들처럼 된다. 자신은 올바른 행동을 했고 올바른 말을 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으면 이웃을 아프게 할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할 수도 있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안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남을 불쌍하게만 생각하고 돕지를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반대로 마음속으로는 썩 예쁜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배고파 하니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니까 마실 것을 주고 추워하니까 옷을 주면 그것은 사랑이다. 또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절할 수도 있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에게 돈을 주면 분명히 도박장으로 달려갈 줄 알면서도 인정에 못 이겨서 돈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녀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훈계하여야 한다.

잠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사랑에 기초한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사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맛보는 행복을 맛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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