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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망 고전15:12-20
부활은 역사적 사실
오늘 읽었던 고린도전서 15장 12절에 보면 1세기 당시 고린도인들 가운데서도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5장 서두에서 부활의 목격자를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을 수 없다는 이들의 주장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1.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했는데 무덤 속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심한 매질을 당했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물과 피가 쏟아지심,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큰 돌을 고려할 때 이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의 시체를 그냥 두면 후일 그를 기념하고 순교했다고 할까봐 훔쳐갔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돌무덤에 장사지낸 후 20여명의 사람들이 겨우 움직일 수 있는 큰 돌로 무덤을 막았습니다. 그리하고도 모자라 파수병을 세워 지키게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훔쳐갔다면 이 거짓을 선포하고 이 거짓을 위해 목숨 버렸을까요?
3. 어떤 이들은 예수의 부활을 말하는 것은 실제적 사실이 아니고 환각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뿐 아니라 일시에 500명의 형제들에게(고전15;6) 나타나셨습니다.
첫 목격자들이 여인들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활은 누군가가 날조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당시 유대법정은 여인의 증언은 증언으로서의 법적 효력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머리를 써서 거짓되게 부활을 말하려했다면 여인들이 부활의 첫 목격자들이었다고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는 변화된 제자들의 삶이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달라졌고, 두려움 많던 그들이 용기 있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이것을 증거하고 박해 받고 순교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부활의 의미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부활은 신적 사건이며 그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롬6:14, 갈1:1, 벧전1:3 등).
2. 예수의 부활은 죄와 사망의 정복을 의미합니다. 무덤이 인생의 종착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였습니다. 부활을 통해 그의 사역이 완전히 이루었음을 보여주며(행 4:25, 롬 5:7), 우주적인 주님이 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였고(요11:25), “사망에 매어있을 수 없었습니다”(행2:24).
3. 부활은 믿는 자의 영생에 대한 보증이다. 예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고(고전15:20),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자”(골1:18, 계1:5)가 되었습니다. ‘첫 열매’는 추수로부터 차용해 온 개념으로(레23:10 이하) 앞으로 걷어 들일 모든 추수를 표시하였듯이 예수님의 부활은 앞으로 있을 모든 신자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이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진리의 영원한 승리를 보여줍니다. 의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죽은 전통에 매인 유대 지도자들이 불의한 세력과 결탁하여 예수를 체포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무덤에 인봉하고 약 2천근(1톤)에 달하는 큰 돌로 가로막고, 그도 모자라 파수병까지 세웠습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님을 영원토록 감금할 수는 없었습니다.
5.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했습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다 하더라도 제자들은 그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신자들이 그 험한 박해와 탄압 아래서도 믿음을 지키고 살았던 것은 과거에 살아계셨던 주님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일하시는 주님을 알고, 그와 교제하고, 그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