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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성호목자. 손지연목녀님을 소개합니다. | 조회수 : 735 |
작성자 : 이종관목사 | 작성일 : 2017-05-20 |
신대섭 목장에서 분가한 이성호입니다.
저는 경북 영천 시골마을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어린시절을 보내고 중2되어선 술,담배,친구들과 어울리고 고3되어선 시험기간에 가출을 하여 성적은 바닥이였고 대학교는 들어가자마자 1학기만 하고 그만두었고 군대에서 탈영해서 부대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정말 조용한 성격인데 어딜가도 온통 시끄러워지는 책임감없는 모습이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대후 집을 떠나 고아아닌 고아처럼 사회생활을 하던중 하나님은 수원에서 울산으로 오도록하였고 시민교회로 출석하게 되었지만.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녀가 하나님을 사랑할수 없을꺼 같단 생각에 한달정도 단니다 그만 둡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던중 컴퓨터를 배우면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 함께 일하던 지인이 교회를 가자는 권유에 친절하게 거절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설교말씀중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어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예수님은 믿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교회를 계속 단니면서 세례도 받게 되었지만 저의 나쁜 습관들은 여전히 버릴수가 없었죠. 매번 담배냄새로 함께 예배하던 분들을 힘들게 하였고 게임에 빠져 게임이 현실인지 현실이 게임인지 헷갈릴때쯤 되면 잠이 들곤 하였고 믿지 않는 이성과의 교제로 주일을 빠뜨리기도 하였고, 일하던 것도 결국 울산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모든걸 정리하고 무작정 대구로 떠나려고 하던날 하나님은 다시 울산시민교회로 불러주셨고 직접 운영할 사업장과 배우자도 만나서 가정도 이루었죠. 이젠 행복한 날들로만 채워질줄 알았던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내의 원인모를 가슴통증과 다르게 해석하고 분노하는 성격은 정말 힘들고 지치게 하였고, 얼마있지 않아 사업장은 어려워져 폐업을 하였고 아내는 임신을 하였고 그래도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여러가지 해보았지만 몇 개월을 못하고 그만두곤하였죠. 그때에 지입 트럭운전을 하면 고수익을 받을수있다는 말에 계약서를 작성하고 출근하여보니 면접때 했던 말들과 다르게 야간근무였고 하루도 쉬는날이 없었고 목장모임도 참석할 수가 없었고 주일예배만 간신히 드린후 바로 출근하는 시간을 6개월을 보내다 그만두려 하였지만 계약서엔 회사측 동의 없이는 그만둘수 없도록 교묘히 만들어졌고 1년이 되면 자동 연장이 되게끔 되어있는 완변한 노예계약서였죠. 트럭 역시 회사소유로 되어있었고 법무사에 찾아가보았지만 계약서에 나의 이름과 인감도장이 찍혀져 있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죠. 아내는 무서워서 그저 눈물만 흘리고 저도 이건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수없을꺼 같단 생각에 막막하기만 했죠. 돈만 쫒아가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자책하던중 제맘에 떠오르는건 다니엘이였습니다. 상황은 달랐지만 법에 매여 사자굴이 던져진 다니엘을 승리하게 만드신 하나님 저도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님의 도우심은 1년이 되던날 실타래가 풀리듯 모든 것이 풀려지게 되었고, 무직이 된 것이 얼마나 감사했던지 모르겠어요. 목장을 향한 마음도 다시 주셨고, 지난날들을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수있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붙들어주신 손을 놓치지 않을까 생각하였고 또다른 직장을 구하는것보다 성경말씀과 기도에 집중할수 있도록 해주셨고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던중 하경삶공부를 마치게 하셨고, 그때서야 확실히 자녀도, 가정도 하나님이 주셨고 목장을 섬기려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신것이니 그 도구가 될 직장도 하나님이 주시겠단 마음이 들어 주위에 걱정에도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중 어느날 아내가 중장비학원에 단녀보란 권유에 비용이 많이 들어갈꺼 같아 망설이다 알아보니 1년을 딱 채우고 그만두게 되었던 지입 트럭일 덕에 이것을 무료로 수강할수있었습니다. 12월 하경삶공부를 수료하고, 2017년 1월달 지게차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고 면접보았던 자동차부품회사에서 2월1일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게되었고 출근 첫날 눈에 보이는 것은 전에 일년동안 너무도 익숙해지게 운전하였던 3.5톤트럭과 지게차 였습니다. 저보다 저를 더 잘아시는 하나님은 저의 성격에도 어렵지않게 잘할수있는을 일을 예비하시고 준비시켜주셨습니다. 출퇴근 시간과 근무는 아침예배와 목장모임에 여유를 주었고 모두들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일을 시작한지 3개월째가 되었을 때 연장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것에 이상하게 생각하던것이 점점 더 불편한 마음이 되었고 아내도 마음이 상해서 다른회사로 옮기자 하였고, 그러니 제 마음은 더 복잡해졌고 하나님이 주신게 아닌가?정말 다른 회사로 옮겨야하나 고민하고있을 때 저의 마음에 15년을 태우며 하루도 끊을수 없던 담배가 10년동안 금단증상 한번없이 끊어지는 기도 응답도 받아보았고 예배도 잘드리고 말씀,기도 생활도 잘하고, 많은 하나님의 체험도 누리면서도 어째서 너의 삶에 결정권은 여전히 너에게 있느냐 라고 묻는거같아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아무생각도 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물음에 몇일전 회사 차장님과 이 문제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며 언쟁하던 장면이 떠올랏고 나의 모든 말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애쓰고 양심의 걸림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시켜도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는 낮아지는 마음이 되어라고 하는 것 같아 주님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니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생겼고 회사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도 주셔서 이젠 그일에도 마음을 쏟고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아내보다 내안에 주신 더 큰 자유로 아내를 정죄하기보다 하나님께 감사하니 기쁨이 됩니다. 가정도 직장도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단순히 나의 소유와 만족감의 차원을 넘어 의와 경건을 믿음과 사랑을 인내와 온유를 따를수 있도록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모데후서 1장 9절 말씀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돌덩어리 같은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아름답게 다듬어 가시고 사랑으로 오래참고 기다려주시고 능력으로 생명의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이제 저도 전하고 나누려 합니다 . 지금까지 저의 간증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대섭 목장에서 분가한 손지연입니다.
아직 저는 손지연 목녀입니다
라는 그 말이 너무 어색해 인사를 신대섭 목장에서 분가한 손지연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목장 분가식을 준비하면서 사실 신랑보고 간증해라고 해야지 난 그냥 올라가서 선서만 하고 내려 와야지 라고
생각하며 목장 분가식을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둘 다 준비해야 된다길래 아니라고 무슨 소리냐며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며 이야기를 했는데 아니 였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말하기 힘든 제 얘기를 다른 사람들 앞에 말하는게 두려웠지만 어렵게 간증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네 저는 1남1녀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늘 작은 것에 쉽게 화를 잘 내고 다혈질인 아버지 그리고 날 늘 다그치기만 하시는 어머니.
언제나 저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늘 의기소침해 있고 다른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늘 그런 답답한 생각 속에 사로 잡혀 살아왔습니다.
제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버지는 날 더 많이 구속하며 억압했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조별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격이 원한하지 못한 저는 같이 숙제할 친구를 정하지
못했고 결국 숙제를 해가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지연이 넌 왜 숙제를 안해 왔니?’ 라고 물으시면 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같이 할 친구가 없어요 라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며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을 해봐’ 라는 말만 하시고 점수도 0점 처리를 하셨습니다.
그런 날은 계속 되었고 그 성격은 변하지를 안았습니다. 친구와 사귀려고 노력을 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주제로 말을 건네야 할지 내가 한 말에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지 걱정이 너무 컷기에 도저히 친구를 사귈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날이 반복되고 힘센 아이들은 나를 놀리며
더 짓궂게 장난을 치며 괴롭혔습니다. 하루는 학교 생활이 너무 힘이 들어서 엄마에게 학교를 옮기고 싶다 이야기를 하자 ‘어딜가나 똑같애 참어’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들 ‘내게 참아라 친구를 사귀려 노력해봐라’ 고만 하고 나를 정말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며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생활은 고등학교까지 갔습니다. 하루는 친구들의 괴롭힘 떨어지는 학교성적이 너무 힘이 들어서 학교에 갔다와서 하루종일을 밥도 먹지 않고 기운 없이 있자 아빠에겐 그 모습이 반가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더니 제 방문을 부서질 듯이 두드리시더니 문을 당장 열어 보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문을 더 쎄게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집이 주택 이였습니다. 갑자기 밖으로 나가시더니 방충망을 뜯고 제 방으로 들어오시더니 손에 잡히는 데로 제게 이것저것 던지셨습니다. 너무 놀라서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풀려 도망갈 힘도 없이 주저앉아 아빠에게 그저 맞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무서움에 떨고 있을 때 엄마는 일을 마치고 오셨고 놀란 엄마는 아빠를 붙잡고 말리셨습니다. 아빠는 분에 못 이기셔서 거실 유리창문을 주먹을 쥐고 깨셨고 피가 나서야 상황이 모두 종료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들 진이 빠져 한동안 거실에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늘 이런 일상속에 노출되 있는 저는 빨리 어른이 돼서 마음데로 살고 싶었습니다.
20살이 되어서도 아빠는 나를 자주 손찌검을 했고 그런 내 마음에는 멍이 점점 더 크게 들어갔습니다.
내 사정을 잘 아는 초등학교때 유일한 단짝친구가 교회에 가자고 하는 것 이였습니다.
원래 성당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교회를 가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도 같이 교회를 가자고 권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너무 내 삶이 힘들었기에 교회라는 곳을 거부감 없이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에 갔는데 마침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란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라는 찬양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처음 듣는 그 가사 한구절 한구절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교회 처음 나온 새신자인데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다들 내게 참아라 노력해봐라 말로만 하는데 그 노래 가사 속 하나님은 날 처음 보는 하나님이신데 날 지켜주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날 도와주겠다 하시니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행복한지 몰랐습니다. 그 뒤로 교회를 매주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시절도 지나고 졸업반이 다가오자 CCC 기독동아리에 순장님께서 중국에 있는 유치원을 가 보라며 자신이 아는 곳인데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지 않겠냐며 엄마아빠와 한번 떨어져 지내보라며 권유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신나는 제안이기에 당장 내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날 그렇게 신뢰하지 않고 나를 손찌검하고 나를 인정하지 않던 부모님이셨는데 막상 중국으로 취업을 간다 하니
심하게 말리셨습니다. 하지만 하루빨리 부모님을 떠나 살고 싶었기에 거센 반대에도 만류하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내 나이 23살 너무 외국이 신기하고 중국말이 재미있었습니다. 주일만 되면 청년부 언니 오빠들과 중국 맛집을 다니며
그렇게 하루하루 너무 즐겁게 보냈습니다. 부모님 없이 혼자 자취 하는 것 또한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9개월이 되었는데, 한국이 너무 그립고 날 그렇게 힘들게 하던 부모님도 점점 그리워졌습니다. 엄마가 해준 음식도 그리워 졌습니다. 결국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나왔습니다.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서 간다는 말도 없이 한국을 갔는데 대뜸 엄마는 ‘니가 성격이 못나서 짤린거 아니냐며 그래서 왔냐고?’ 그러셨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첫날 나는 다시 마음에 진동이 왔고 왜 한국을 내가 다시 들어왔지 라며 힘들어 했습니다.
그리고 난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25살이 돼서부터 결심이 섰고 결혼 상대를 늘 찾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좋은 형제를 달라며 그렇게 울며불며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너무나 정직하신 분이십니다. 정말 저희 신랑은 정말로 믿음만 좋습니다. 돈 한푼 없이 저희 신랑은 저와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을 했습니다.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있는 싱글 형제 자매님들 기도 확실히 구체적으로 하셔서 좋은 가정을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결혼 초 저희는 가진게 너무 없어서 정말 많이 싸우고 또 서로 다른 삶을 살다 만나서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정말 결혼 2년째 되었을 땐 어떻게 이런 사람에게 내가 빠졌을까 싶으며 나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신랑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쓰레기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버려주기도 하며 제가 일을 마치고 올 땐 집도 깨끗하게 치워 놓을 때가 있습니다. 아주 가끔입니다. 그래도 그런 신랑의 변화에 감사합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내 상처들을 이야기들을 가장 잘 들어 주는 내게 꼭 맞는 사람인 걸 요즘은 많이 깨닫습니다. 내 믿음이 바닥을 치고 흔들릴 때면 말씀을 많이 들려줍니다. 아직 제 신앙은 종지그릇 만도 못해 사실 말씀으로 나를 위로해 주면 너무 힘이 들 때 가 많지만 그래도 나보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신랑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실 목장 분가를 신랑이 계속 하자고 했지만 너무 두려웠습니다.
색깔이 너무 강한 VIP를 섬기는게 어렵고, 음식하는게 너무 어렵고, 집도 너무 좁고, 아이가 뱃속에 또 하나있고, 난 그리고 말도 잘 못하고 믿음도 든든히 없는데 정말 목녀 하지 말아야 핑계는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신랑이 하자 하니 이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믿음 없는 목녀에게 시험받아 모든 목원들 다 떠나서 목장을 나랑 신랑만 하는 일 많지는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 그건 나의 생각뿐이지 아직 그런 일은 저희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남편 목자를 따라서 열심히 섬겨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간증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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