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홈  >  시민공동체  >  커뮤니티

 "

  제  목 : 묵은지 같은 우정 조회수 : 448
  작성자 : 박재준 작성일 : 2024-05-28

                                     묵은지 같은 우정

해가 바뀐다. 등산 가방에 성경 +찬송가한 권을 챙겨 넣고 산에 오른다. 장소 물색은 친구의 몫이고, 날짜만 조율하면 된다. 굳이 거창하게 장풍득수(藏風得水=풍수지리학에서 바람을 피하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동산의 어느 정상 부근, 따뜻하고 평평한 곳이면 시쳇말로 이다. 신앙 연륜이 깊은 친구가 사회와 설교를 맡지만, 성도는 나 혼자 뿐이니 그야말로 척하면 삼척이다. 찬송가는 단골 메뉴로 자리 잡은 301˂지금까지 지내온 것˃…. 제목부터 울컥해진다. 친구 앞에서 훌쩍일 수도 없어 태연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운다.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중략~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수년째 계속되는 산상예배(山上禮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의 초년생으로서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그래도 친구를 잘 만난 덕분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끌러가다시피 해서 교회출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더 큰 뜻을 품고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꿈에도 그리던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이때 그 친구의 선물이 신·구약을 하나로 묶은 합본(合本)성경이었고, 그 후 10여 년이 넘도록 한 번도 펴보지 않았고, 책장 한구석에서 낮잠만 자고 있었다.

사회에 첫 발을 내 디뎠던 곳은 바로 울산이었다. 이제 25년이 넘어 이 도성에서 하나님께 다시금 제단을 쌓고 있으니,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리라. 그때 충성치 못함을 뉘우치게 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구원역사를 몸소 체험하게 하셨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사실 서울로 전근 갈 때부터 그 친구와 한 곳에서 같이 근무할 확률은 거의 없었고, 특히 직군(職群)이 완전히 달랐으니 그럴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신설 월성원자력 발전소라는 직장에 같이 몸담기 위해 캐나다 해외기술연수팀 일원으로 합류하게 된 덕분이었다. 그때 나의 뇌리를 언뜻 스치고 지나간 것은 오랜 친구와 재회한다는 기쁨이 아니라 사랑의 선물에 대한 나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부끄러움이었다. 우리들의 연수기간과 장소는 서로 달랐다. 하지만 귀국하여 황무지 같은 그곳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하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앞으로의 신앙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한 권의 성경으로 영구히 그리스도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고, 이 방법 또한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똑같은 선물을, 누구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전근(轉勤) 가는 동료에게 건네준 일이 있었다. 이제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계속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나의 신앙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읍천교회 초대 목사님의 고마움과 수많은 사람의 도움은 나를 일평생 빚진 자로 만들었다. 특히 나를 구원의 방주로 인도해 준 그 친구, 믿음의 동역자인 장 태휘 장로가 오늘따라 묵은지() 같은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우정에 이어 또 다른 비사 한 토막. 신생교회의 최대난제는 주일학교의 기틀을 세우고 어린 생명의 영적교육을 책임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카이로스(Kairos) 시간에 맞춰 친구의 출현은 필연이었다. 몰려드는 어린이에게 반듯한 성경공부를 책임진 부장교사직은 무한봉사이었고, 모든 부모들에게는 안심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나의 자녀도 포함된 것은 또 다른 빚! 잊을 수 없다. 정말 고맙다, 친구야! 글 길이의 제한 때문에 76세에 소천하신 고()임상률 목사님과의 일화(逸話)를 속속들이 소개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2023214일 경주기술세미나에 참석하게 하고, 블루원 328호실에 함께 투숙 할 기회를 준 주최 측에 감사를 드린다. 잠 못 드는 오늘밤, 30여 년간 머릿속에서만 묵혀 두었던 친구에 대한 고백의 초안(草案)을 정리해서 일사천리로 퇴고(推敲)까지 마치고 한 편의 글로 선보이게 한 것,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2024528일 박재준 씀 

 "

전체댓글 3

박재준2024.05.28 13:33
이 곳에 새내기 인사드리며
고백 수필이오니 재미로 보시길 바랍니다.
김창훈2024.05.28 15:36
귀한 고백의 수필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생에 많은 만남이 있는데 그 중에 믿음의 동지와의 만남이 가장 감사하고 소중한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정을 통해 믿음의 진보를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참 신묘막측합니다.
박재준2024.06.03 12:21
보충 설명드립니다.
본 수필은 2023년 6월30일자 울산제일일보에 실린 글이며, 당시 신문사 요청으로
글길이 조정이 불가피했음을 밝힙니다.
댓글 쓰기0/1200
입력
  이전글 :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대로~..
  다음글 : 온 가족 새벽기도회 최고 ~
이전글 다음글          프린트하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