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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상천외한 만남! 조회수 : 300
  작성자 : 박재준 작성일 : 2024-11-28

박 계장! 차 한 잔 하지.” 전화음성 한마디에 하고는 얼어버렸다. 부동자세로. 50여 년 전, 계장 승진한 후 새 부임지인 한전 장비관리사무소에서 처음 맞이한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박균성 소장은 대한민국의 엘리트 중 엘리트로 소문이 났던 분.

그 무렵 우리나라의 전력회사는 민간 3(경성전기, 조선전업, 남선전기)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5·16 이후, 경제개발에 필수적인 전력사업의 효율성 극대화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분할된 전력 3사의 단일화가 그 해답이었고, 최종목표는 국유화에 있었다. 결국 전력 3사는 한국전력이란 새 이름으로 거듭나게 된다.

경제기획원 고위간부였던 박 소장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한전 대통합의 장비·행정 분야 책임자로 파견되어 왔다. 시간이 흘러 임무가 끝난 후에는 파견근무자 대부분이 원대복귀를 했지만 박 소장은 1직급(이사급) 최고책임자로 눌러앉고 만다.

이제부터는 박 계장도 간부인 만큼 신문 한 장을 펼쳐도 편집국장의 자세로 봐야 한다.” 다소곳이 앉아 훈시를 듣고 있던 필자에게 박 소장이 불쑥 끄집어낸 뜻밖의 충고였다. 단순한 기술직급이 현장에 충실하면 그만이라고 여긴 편협한 생각이 보기 좋게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한전 간부 시험은 한전고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시험과목은 주로 전공과목, 사규와 상식, 논문이었고 특히 전공은 범위가 워낙 넓어 사시·행시에 비견할 만도 했다. 운 좋게 합격은 했지만 필자는 보직이 특수업무여서 조직변경과 맞물려 동기들보다 약 3개월 늦게 초임발령을 받게 된다. 훌륭한 멘토를 만나기 위한 행운의 기다림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런 분들과의 만남은 차례로 이어진다. 기술 분야의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 행정 분야까지 발을 뻗칠 수 있도록 지평을 열어주신 분, 글을 대하는 기본기(基本技)를 터득하게 도와주신 분. 이분한테서 배우고 익힌 노하우는 나중에 월성원전의 굵직굵직한 사건·사고 보고서도 거침없이 써내려가게 만든 숨은 실력의 자양분이 된다.

박 소장에 또 한 분의 멘토가 나타난다. 한전 퇴임 후 30여년 만에 극적으로 만난 박정기 전 한전 사장이 바로 그분. 박 전 사장과의 인연은 월성원자력 1호기의 초대형 사고 때 죽기를 각오하고 사고 수습에 나선 필자의 돈키호테 같은 우직함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맺어진다. 박 전 사장은 한전 100주년에 필자가 사내 -텐 영웅상을 받도록 도와주었고 매스컴에 소개까지 해주었다. 이분은 지금도 필자를 박 과장’(은퇴 당시 필자의 직급) 또는 사장이라 부르며 끈끈한 인연을 1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가 집필한 수많은 저서 중 백미(白眉)는 단연 <어느 할아버지의 에너토피아 이야기>. 한전 재직 시의 경영 경험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진솔하고 재미나게 풀어낸 저서로, 목구멍에 술 넘어 가듯 술술 풀어나간 그의 글 솜씨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군 장교 출신인 그의 문체는 똘똘 뭉친 군인정신으로 충만하고, 스타카토(staccato)로 끊어내는 문장은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필자는 살아있는 경영지침서’, ‘범접할 수 없는 인생지침서라고 감히 자랑할 수 있다.이 기회에 판매 홍보문 한 줄을 덧붙인다면 소주 한 잔 값이면 충분하니 일독을 권한다하고 싶다.

끝으로 빼 놓을 수 없는 한 사람, ··· 논설실장! 그는 갑장이면서, 항상 인쇄 문턱에서 수문장 노릇을 해 준 울산제일일보 터줏대감이다. 원자력 죽이기가 시작 될 때 첫 번째 멀쩡한 월성원자력1호기 왜 죽이나?”를 위시해 후속편 살려라, 월성1호기!”가 등재된 후 어느 날 그로부터 인터뷰 가능 한지문의 전화가 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작스런 제안에 얼떨떨했지만 불과 3분 거리라 즉각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고맙게도 2018.02.21.자 신문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 결정, 대통령도 바꾸면 안 돼!”라는 헤드라인 선택은 일품(逸品)이었다. 기자의 동물적 감각에다 신문사 명운(?)까지 건 멋진 한 줄에 혀를 내둘렀다.50년 전의 충격이 데자뷔로 비춰졌다. 이런 것을 기적이라 하지 않을까?. 항상 글의 맥을 잡아주고 기름으로 감칠맛을 더 해 주는 솜씨! 비록 만난 지는 2년여 밖에 안 되지만 진솔한 속마음을 나눌 수 있어 죽마고우나 진배없다. 친구야! 사랑해~~ 꼭 한 마디만 덧붙이자. 나와 같이 예수쟁이 되기를 기도한다. 성경에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되다고 합니다(사도행전 20:35).

인생길에 참다운 멘토가 되어 주신 분들, 다시 한 번 더 불러 보고 싶습니다. 글 보는 눈을 뜨게 해 준 박균성 님, 글에 향기 넣는 법을 알게 해 준 박정기 님, 글을 바로 세우고 윤필을 아끼지 아니한 김정주 님, 그야말로 기상천외하게 만난 특별한 인연의 소산이리라.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남은 생애에도 배움을 실천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1128일 박재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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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박재준2024.11.28 10:52
본 수필은 2019년 9월16일 울산제일일보에 등재된 것임.제미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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