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몽골 송병철,철몽 선교사 입니다 | 조회수 : 1413 |
작성자 : 안명환 | 작성일 : 2010-07-09 |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울산 시민교회 가족 여러분께 문안드립니다. 울산 시민교회가 저희 몽골을 기억해주시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 분들이 계셔서 저희 부부가 힘내어 일할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안명환.김태구,박성락목자님. 이 몽골소식과 기도 편지를 울산 시민교회 가족여러분과 나누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척 더운 여름의 한가운데로 접어든 7월입니다. 오랜만에 여기 몽골땅 소식을 전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어떤 글을 먼저 쓸까? 여러가지를 생각합니다 . 제 삶을 돌아 보면 늘 주님앞에 부끄러운 선교사임을 알기에 몇 번이고 글을 쓰다가 다시 접곤 하였습니다.
비자 문제
지난 6월 20일 부터 26일까지 비자연장을 위해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중국이라지만 사실은 내몽골인 이렌에 머물며 보따리상으로 삶을 살아가는 몽골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수 있었습니다.
동고비 사역을 위해 기차를 타고 다닌 지난 2년 반동안 기차안에서 만난 보따리 상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켜 몽골로 물건을 가져오는지를 보았으며, 그 들 삶의 내면에 숨겨진 고달품도 몸소 느끼고 왔습니다.
몽골과 중국의 국경지역 즉 몽골쪽은 자밍우드라는 도시? 에 도착하여 비자 검사후 30분만 더 달리면 중국의 이렌 시가 나옵니다. 몽골 사람 270만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의 80%를 바로 이 이렌에서 사가지고 옵니다. 중국이 국경을 닫으면 당장 한달을 버티기 힘들고 금방 물가가 2배로 올라 버린다는 바로 몽골 경제의 숨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첫날은 과일과 쌀등 농상품과 관련된 시장을 둘러 보았는데 대략 몽골에서 몽골 국민들이 사먹는 가격의 50%에 판매 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몽골 사람들은 질도 떨어지는 물건 (이송중 상함) 을 두배의 가격에 사먹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날은 공상품만 모아서 판매하는 곳을 다녀보았습니다. 8월에 호산나 교회의 교회 학교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연필과 공책등 문구류를 사기위함도 있었습니다. 축구 운동장 보다 더 커 보이는 곳에 없는 것이 없도록 늘어 놓고 떨이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손님중 대부분은 몽골 사람이었기에 저희가 지나가면 몽골말로 흥정을 걸어 왔습니다. 여기가 몽골인지? 중국인지 ^^
아이들에게 줄 문구류를 40% 가격정도에 산 저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 중국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 울란으로 돌아오기 위해 울란에서 중국으로 갈때와는 다른 경로로 길을 알아보았습니다. 갈때는 울란에서 바로 중국 이렌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갔지만 올땐 상인들과 같이 오고 싶어서 보따리 상인을 만나 그들의 움직임대로 이동을 해보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실수 였는지는 그땐 몰랐습니다.
목요일 오전 부터 짐을 싸고 이렌에서 자밍우드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갔는데 개인운전수가 다가와 흥정을 해왔고 우린 아주머니 운전수를 따라 그의 차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출발을 하지 않고 우리 부부 일행 외에 다른 손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결국 12시가 넘어 추가 손님을 태우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찌는 고비 사막 40도를 훌쩍 넘은듯 아! 너무도 더운 차안에 맨 뒷칸은 보따리 상인의 짐으로 가득, 둘째 줄은 5명이 앉아서 숨도 제대로 못쉬는 공간에 발밑에 수박덩이를 쫙 깔고 ^^ ,그렇게 3시간 30분이 걸려서 겨우 국경의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사실은 30분이면 오는 거리인데 뭔 검사가 그리도 많은지) 몽골땅 자밍우드에 도착 하였습니다. 분명 5시 30분에 기차가 울란으로 출발한다고 하였기에 철몽과 전 도착하자 마자 기차표를 구하려고 기차역으로 갔으나 … 이미 좌석은 바닥 났었고 혹시나 하고 기차 역 앞 땅 바닥에 퍼지고 앉아 더위에 녹초가 되어 기다리는 저희에게 5분이 멀다하고 다가오는 학생들.. “ 암표 있는데 사실래요?”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이전에 동고비 교회의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밍우드로 간다기에 너희들이 가서 무슨 일을 해 돈을 버냐? 궁금했었는데.. 암표상들이 이런 아이들을 앞에 내세우고 손님 한명 데리고 오면 조금의 용돈을 받는 식으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희 부부는 힘들게 자밍우드까지 왔으나 기차표를 구하지 못하고 근처의 여관에서 하루밤을 보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기차표를 구하냐?고 아내에게 물으니 내일 아침 새벽 5시에 여기 기차역에 줄을 서면 구할수있다고 합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 다음날 5시에 아내와 함께 기차역에 도착한 전 또 한번 놀랬습니다.. 벌써 50명 가량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 그중엔 그곳에서 밤을 샌 사람도 있는것 같았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저희에게 암표상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 당신들은 표 못삽니다.. ^^” 이렇고 지나갔습니다. 7시가 되면 문을 연다기에 2시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황당한것은 7시가되니 우리 앞에 있던 사람이 두배로 늘어 100명이 넘어버렸습니다. 바로 새치기 ^^ 질서를 담당한 경찰은 전기 충격기까지 동원해서 “지지직 지지직” 거리며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얼마나 질서가 안잡혔으면 표 사러 온사람에게 총을 겨눌순 없는 것이고 전기 충격기를 이용해 질서를 잡고 있을까 상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암표상들의 자기들끼리 짜고 서로 자리 잡아주면서 표를 몰수 하니 오늘도 못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음으로 계속 기도를 하면서 1시간 반을 더 기다렸으나 결국 우리 앞 20여명을 남겨두고 표가 매진 후후
참 3시간 반을 줄서서 기다렸는데 표를 못사다니 …. 주님께 다시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순간 너무도 기쁜 소식이,, 표를 못산 사람이 많아 기차 한칸을 더 늘려 표를 팔아 주었고 다행히 아내와 전 기차표를 구할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자밍우드에서 울란으로 오는 유일한 교통 수단인 기차 !!! 기차표가 없다면 사실 주일에도 못올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차표를 구할수 있도록 도우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예수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 자꾸 나왔습니다 ^^
이렇게 해서 토요일 아침 11시에 울란에 도착함으로 비자 연장을 위한 중국 방문을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몽골인들의 삶을 많이 보고 느끼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너무도 지루하게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
호산나 한글 공부방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새롭게 개편된 한글 공부방은 월 수 금 이렇게 매주 3일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회 문앞에다 광고도 붙였더니 전화 상담이 오곤합니다.. 무료이냐? 몽골사람이 가르치냐? .. 외국에 나와보니 한국어를 할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얼마나 필요한 사람이 되는지,.,, 그들의 필요를 주님안에서 기쁨으로 섬기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글 공부중 중간 쉬는 시간에 읽는 성경 읽기도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 합니다.. 성경을 읽고 오늘 읽은 말씀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씀을 한구절씩 골라 나누는 시간에도 서로 나누고 싶어 하는 모습이 참 감사합니다.
침뜸 치료
교회 아이들중 “어터커” (13세)란 여자 아이가 있는데 한국어 공부중 “ 선생님 전 오늘 일찍 가봐야 되요 “ 하길래 이유를 물으니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임원하셨고 어머님의 식사를 직접 만들어 병원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 변명을 들어보니 2007년 위암 수술을 하셨고 다시 위에서 피가 나오고 그 피가 입으로 넘어오며 음식을 잘 못드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위암이 재발한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몇주가 지나 어린이 예배전 매번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돌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어터커의 집앞을 지나가다 담 넘어 어터커를 보고 교회 나오라고 하니 “ 선생님 저희 집에 들어와 보세요 “ 라는 것입니다. 해서 어터커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터커의 집은 시냇가 옆 저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몽골식 게르에 살고 있습니다. 모기가 엄청 많습니다.. 완전 무방비로 당하고 이었습니다. 게르에 들어가니 두개의 침대가 있는데 한쪽 침대는 어터커의 어머님이 누워 계셨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무척 만나보고 싶었기때문입니다. 46살의 어머님은 3딸과 한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남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가족을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입니다. 몽골은 이런 가정이 너무도 많기에 아빠에 대해 물어 보는 것 자체가 큰 실례 일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까지 어터커에게 아빠 이야기는 못물 어 봤습니다.
앉으신 어머님 손을 잡고 내일 한국어 수업후 4시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하고 일단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혼자 생각에 혹시 어머님을 치료했는데 낫지 않으시고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돌아가시면.. 이일로 혹시 난 몽골 경찰에 잡혀가는 건아닌지? 그일로 몽골에서 추방당하는 건 아닌지? 별생각 별걱정이 ^^ 저의 침뜸 스승의 스승이신 구당 김남수 선생님께서 진단학을 가르치실때 한시간내 딴 이야기만 하시다 학생이” 선생님 진단은 안가르 쳐 주세요? “ 하고 물으니깐 “ 의사는 죽을 사람과 살 사람만 구분하면되 “ 라고 하신 말씀이 가슴속에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봐도 제가 치료해드리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위험을 무릎쓰고 다음날 침뜸 재료를 준비하여 어머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치료전 손을 잡고 당신을 위해 제가 믿는 예수님께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드린후 침뜸 치료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치료를 하면서 어머님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던중 이분이 몇년전 허리가 무척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때 담당 선생님이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후 성경을 읽어 본적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의가족은 제 친여동생이 결혼후 두자녀를 데리고 들어와 지금 이 게르에서 함께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모두 8식구가 한 게르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3번씩 침뜸 치료를 해드리고 있는데 아직까지 피가 다시 넘어 오지 않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8명의 온가족이 다 구원 받을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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